“깜깜이 폐차시장 양지로 끌어냈는데… 규제 탓에 전과자 될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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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공화국엔 미래가 없다]<9>온라인 폐차중개업소의 눈물

윤석민 조인스오토 대표가 12일 서울 동대문구의 사무실에서 서울지검으로부터 기소유예를 통보받은 서류를 들고 고민하고 있다. 서류상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에 있지만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현재 지인의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윤석민 조인스오토 대표가 12일 서울 동대문구의 사무실에서 서울지검으로부터 기소유예를 통보받은 서류를 들고 고민하고 있다. 서류상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에 있지만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현재 지인의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거기 불법 업체 맞죠? 사업 언제 그만둘 건가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폐차 비교견적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 조인스오토를 만든 윤석민 대표는 얼마 전 또 한 통의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윤 대표에게는 2015년 5월 창업 이후 폐차 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회와 소속 회원사들로부터 심심찮게 이런 전화가 걸려온다. 그때마다 윤 대표는 “정부가 온라인 폐차견적 서비스에 대해 합법 여부를 검토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 전과자 만들어내는 규제

윤 대표는 3년 전 모바일 앱에 폐차 정보를 올리면 여러 폐차 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아볼 수 있고, 부품업체들도 손쉽게 중고 부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폐차 고객과 폐차 업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알선 서비스인 셈이다. 윤 대표가 폐차 앱 서비스에 주목하게 된 것은 국내 폐차 시장의 깜깜이 구조 때문이다.

연간 국내 폐차 대수는 79만 대로 폐차 거래와 폐차에서 나오는 중고 부품 거래액을 합치면 연간 2조 원에 이른다.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지만 소비자들은 폐차 관련 정보를 인터넷 검색이나 길거리 명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소비자보다 폐차 업자가 우위에 있는 시장이어서 폐차 가격도 폐차 업체, 소재지, 담당자에 따라 들쑥날쑥 이뤄진다. 게다가 폐차업(자동차해체재활용업) 등록을 하지 않은 불법 업자들이 폐차를 중고차로 둔갑시켜 재판매하는 문제도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한다. 부품업체들도 전국 폐차장이 보유한 부품 정보를 얻기 어려워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등 불필요한 거래비용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표의 폐차 앱 서비스는 큰 관심을 끌었다. 서비스 1년 만에 윤 대표의 앱에서 거래되는 폐차 대수는 월 300대에 달했고 직원도 5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순조롭던 사업은 얼마 못 가 좌초 위험에 놓였다. 올해 4월 폐차업계로부터 불법 영업으로 고소를 당한 것이다. 폐차 업자들은 ‘폐차업 등록을 하지 않고 폐차를 모집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폐차를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현행법을 걸고넘어졌다. 윤 대표는 최근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유죄를 뒤집지는 못했다.

윤 대표는 ‘불법 영업’이라는 딱지를 떼고자 폐차업 등록도 검토했으나 오프라인 영업시설을 갖추라는 요건이 있는 등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결국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거래 규모는 10분의 1로 줄었다. 함께하던 직원도 다 떠났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대출까지 받아 총 7000만 원의 돈을 끌어다 썼다.

윤 대표는 “폐차 거래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규제와 기득권의 반발 때문에 전과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매달 70만 원이 넘는 빚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 좁은 법 해석으로 사업 봉쇄

정부가 온·오프라인 폐차 알선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알선 과정에서 폐차업체들이 매수 물건을 즉시 ‘폐차’하지 않고 중고차로 둔갑시켜 ‘재판매’하는 불법을 양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폐차업체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비용 상승 부담을 만회하기 위해 불법으로 폐차 유통을 할 유인이 커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폐차업체의 불법행위를 온라인 폐차 중개업체에 전가하는 것이라는 게 폐차업계의 지적이다. ‘문제 발생 가능성’만 가지고 온라인 폐차 거래업체의 거래 및 알선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폐차 플랫폼이 허가받은 폐차업체와만 거래하도록 하고, 폐차까지 이뤄지는지 관리감독할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여지가 충분함에도 일단 규제부터 하고 보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폐차의 온라인 알선을 허용하면 폐차돼야 할 차량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들 우려가 크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로 이어져 사고 위험이 극대화되면 결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현재 지자체에서도 폐차업체가 제대로 폐차를 이행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아직도 ‘온라인 폐차 중개’의 합법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정부의 규제 개선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온라인 중고차 거래도 처음에는 불법이었지만 규제 개선으로 합법화됐다”면서 “온라인 폐차 거래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윤 대표는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 해당 사항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폐차시장#규제 탓에 전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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