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동일]문구 살짝 바꾼뒤 ‘새 법안’이라는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서동일·산업부
서동일·산업부
‘온실·배출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를 사는 사람에게서 돈을 걷어 전기·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자동차를 사는 사람에게 준다.’

환경부 및 일부 정치권이 재추진하는 ‘친환경차협력금제도’의 골자다. 길게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위해, 짧게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세워진 대책이다. ‘환경을 생각하자’는 전제에 이견이 있을 수 없는데도 한국 자동차산업의 반대가 거세다. 왜일까.

친환경차협력금제도는 3년 전 ‘저탄소차협력금제도’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가 2021년까지 시행이 유예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환경부 장관은 (중략)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자에게 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는 문장에 ‘배출가스’라는 한 단어가 추가된 것뿐이다. 글귀가 달라졌으니 새 법안이고, 3년 전 유예 결정을 번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환경부와 일부 정치권 주장이다.

3년 전에는 ‘온실가스’, 지금은 ‘배출가스’ 때문에 추진하니 핵심이 다르다는 주장을 받아준다고 치더라도 “차량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과금을 매겨 돈을 걷으면 시장이 혼란에 빠진다”는 우려는 달라지지 않는다.

집 다음으로 큰돈이 들어가는 자동차는 미세한 가격 변화에도 시장이 크게 출렁인다. 판매 현장에서 30만∼100만 원 소규모 인센티브에도 민감하게 수요가 달라지는 것이 자동차 시장이다. 정부 부처 및 산업계의 합의 끝에 2021년까지 유예하기로 했던 사안을 환경부가 먼저 뒤집겠다고 나섰으니 시장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뿐 아니라 쌍용, 한국GM, 르노삼성 등 국내 공장을 운영 중인 외국인투자기업은 일본 등 해외 브랜드에 비해 친환경차 개발 능력이 열세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먼저 나서 국산차 소비자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외산차 소비자를 지원해주는 꼴이 된다. 친환경차의 가격대는 최소 3000만 원 이상에서 형성되니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돈을 걷어 높은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다.

완성차 브랜드를 가진 어느 국가도 자국 산업을 힘들게 만드는 정책을 펴지 않는다. 친환경차협력금제도가 취지는 좋지만 미국, 독일 등 해외 국가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 이유다. 환경부는 프랑스를 ‘선례’로 들지만 이 역시 소형차 위주 자국 브랜드를 키우기 위함이지 환경을 산업보다 우선시해서가 아니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는 충전소 등 사회적 인프라가 마련되면 자연스레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마련이다. 기업도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자동차 가격을 만져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미 일단락된 논란을 바탕으로 수년 전부터 시장 경쟁 상황과 수요층을 살펴보며 전략을 수립한 자동차 업체의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친환경차협력금제도#자동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