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크는 車공유시장… 한국은 근처에도 못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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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발 묶는 행정규제

#1. 지난달 베트남 호찌민으로 출장을 다녀온 회사원 신모 씨(36)는 글로벌 차량공유 업체 우버 덕을 톡톡히 봤다. 우버는 출장자와 운전사 간에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승객이 미리 설정해 둔 목적지에 정확히 데려다 줬다. 혼자 이동해야 할 일이 많은 출장길에 안성맞춤이었다. 신 씨는 앞서 싱가포르 여행 때 우버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았다. 스마트폰에 남아 있던 우버 앱은 베트남에서도 문제없이 작동됐다.

결제는 더 편리했다. 베트남 화폐인 동화(VND)는 숫자 단위가 커 익숙지 않았는데 우버는 미리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가 됐다. 지갑을 열고 닫는 수고가 필요 없었다. 우버는 전 세계 6개 대륙의 600개 이상 도시에서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인 김모 씨(35)는 베이징에서 이동할 때 주로 디디추싱 앱을 사용한다. 디디추싱엔 일반 차량은 물론이고 고급 차량, 저렴한 차량 등 3등급으로 나눠 택시를 선택하는 기능이 있다. 목적지가 같은 사람이 함께 탈 수 있는 카풀용 옵션도 있어 시간에 여유가 있거나 요금을 아끼고 싶을 땐 이 옵션을 사용한다. 요금 지불도 신용카드 외에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김 씨는 “예약 기능도 있어 공항에 갈 때면 비행기 시간에 맞춰 미리 예약해 둔다”며 “카카오택시와 비교해도 편리한 기능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우버와 디디추싱 등의 차량공유 업체들은 각 정부의 ‘네거티브 규제(선 허용 후 규제)’ 적용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법 논란으로 아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서비스다. 국내 카풀업체인 ‘풀러스’가 출근 및 퇴근시간에만 제공하던 서비스를 24시간 체제로 확대한다고 하자 서울시는 현행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풀러스의 카풀앱은 택시보다 저렴한 요금을 기반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부르는 방식은 카카오택시와 비슷하지만 카풀 차량을 이용해 요금이 30∼40% 저렴하다.

이달 20일 택시업계, 정부, 스타트업은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규제 개선 정책토론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로 무기한 연기됐다. 배달의민족 등 120여 개 스타트업을 회원으로 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성명서를 내고 “서울시의 고발은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육성이라는 정책 방향에 반하는 과도한 행정 행위이자 행정 당국에 의한 ‘그림자 규제’”라고 반발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변혁의 세상에서는 ‘승자 독식’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해 시장을 선점한 1위 사업자가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차량공유 시장은 최근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신산업 중 하나다.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이고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일본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은 내년 봄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 디디추싱은 일본 진출을 위해 일본 최대 택시회사인 다이이치(第一)교통산업과 손잡고 도쿄에서 500대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2015년 디디추싱에 56억 달러(약 6조1000억 원)를 투자했다. 이어 동남아시아의 차량공유 업체인 ‘그랩’에 30억 달러(약 3조2700억 원), 최근 우버에 100억 달러(약 10조9000억 원)를 투자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차량공유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곳으로 우버의 시장가치는 현재 70조∼80조 원으로 평가받고 중국 디디추싱도 40조 원 정도”라며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랩 같은 차량공유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는데 한국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이런 업체가 못 나오고 있다”고 했다. 최근 창업자 116명을 대상으로 ‘창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 이들 중 43.1%가 규제 완화를 들었다.

23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은 처음으로 공동 정책제안서를 발간했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법·제도 개선 방안과 관련해 “‘한국에는 미친 천재들은 있어도 미친 듯이 일할 생태계는 없다’라는 지적처럼 한국의 일부 분야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규제 문제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네거티브 규제 이상으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규제 관련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4차 산업혁명#자동차#행정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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