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원활한 가업 승계로 명문 장수기업 늘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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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가업을 힘들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보다는 단순히 부를 대물림한다는 식으로 가업 승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안타깝습니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가업 승계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흥진정밀 정태련 부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 정기복 창업주가 1974년 설립한 ㈜흥진정밀은 아스팔트·콘크리트 시험기기를 만드는 회사다. 창업주는 아들에게 힘든 제조업을 시키기도 미안하고 높은 상속세 등 가업 승계를 막는 걸림돌이 많은 현실에서 회사 매각을 검토했다. 이때 외국계 은행 해외 지점에서 근무 중이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대를 이어 회사를 꾸려가겠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힘들게 가업을 이끌어 온 것을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지 가업을 잇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중소·중견업계는 높은 상속세와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 등 원활한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창업 세대가 고령화되고 있어 수년 내에 가업 승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곳이 많아서다. 이들은 현재의 높은 상속세율과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인데 여기에 최대 주주 할증 과세가 붙으면 최고 65%까지 치솟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상속세 부담을 낮춰 가업 승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가업상속공제제도다. 문제는 이 공제를 받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공제를 받으려면 피상속인의 기업 경영 기간이 10년을 넘어야 하고, 상속인이 최소 10년간 대표직을 맡으면서 지분을 팔아서도 안 되고, 업종을 바꿔서도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이 제도를 활용해 승계를 하는 곳은 1년에 60여 개에 그친다. 상속세 공제를 해주면서 대상 기업을 연평균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는 곳도 한국뿐이다.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견기업 중에는 3000억 원에서 1조 원 구간의 매출을 가진 곳이 많은데 이들은 아예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꼭 가족에게 기업을 물려줄 필요가 있냐며 전문경영인을 통해 기업을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보다 긴 안목에서 장기 투자가 가능한 가족 경영의 장점도 많다. 창업해서 회사를 일궈낸 아버지, 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2, 3세의 성장 배경도 가족 경영의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명문 장수기업 가운데 가족 기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추세는 기업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알아서다. 장수 기업일수록 매출액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사 매출이 늘면 이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장수 기업이 국가의 중요한 경제 자산인 셈이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어떻게든 가업을 승계하려고 노력했던 창업주들 가운데 많은 이가 현실에 좌절하고 승계를 포기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성공적인 중소·중견기업 가업 승계는 장수 기업을 많이 만들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첫 단추인 가업승계제도의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중소기업#상속세 부담#가업상속공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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