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VIP로 위장 ‘주차장 카멜레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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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주차난에 VIP 스티커 구입… 최고등급은 100만원까지 거래돼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물 수십 건

서울에 사는 이모 씨(37)는 1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A백화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구입했다. 1년 이용권 가격은 45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씨가 구입한 스티커를 붙인 차량은 A백화점의 모든 지점에서 하루 5시간씩 무료 주차가 가능하고 대리 주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쇼핑과 외식을 위해 주말에 명동과 잠실 일대를 자주 찾는다는 이 씨는 “금액이 만만찮지만 도심 나갈 때마다 주차난에 시달리느니 주차 스티커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도심 주차난에 일부 시민이 백화점과 시내 면세점의 VIP 주차 스티커를 사서 붙이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백화점 주차 관리의 빈틈을 노려 VIP로 위장한 ‘주차장 카(Car)멜레온’들은 주로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통해 주차 스티커를 구입한다. 올해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주차 스티커 거래 게시물은 수십 건에 이른다. 주로 거래되는 A백화점의 주차 스티커는 등급에 따라 ‘특정 지점·일일 3시간 무료 주차, 대리 주차 미제공’부터 ‘전 지점·영업시간 내내 무료 주차, 대리 주차 제공’까지 4단계로 혜택이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은 5만∼10만 원, 가장 높은 등급은 75만∼10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주차권을 산 사람들은 ‘도심 주차 지옥 때문에 마지못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도심에 주차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주차요금 역시 만만치 않다. 백화점·시내면세점은 도심에 위치한 곳이 많고 VIP 주차 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요일인 16일 오후 서울 중구 A백화점 앞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만차 상태인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면 30∼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지하주차장 입구 옆에 위치한 VIP 주차장 1층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또 백화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면세점 VIP 고객을 위한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은 줄을 설 필요 없이 바로 진입이 가능하고 주차 공간도 50대 이상 남아 있었다.

다른 대도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VIP 주차권을 사려다 실패했다는 부산시민 정모 씨(23)는 “도심부인 서면에서는 백화점 앞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A백화점은 홈페이지를 통해 2016년부터 ‘우수고객 주차권을 양도하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고 공지하고 있다. A백화점 관계자는 “주차권을 양도해선 안 된다고 해마다 알리고 있는데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백화점 vip로 위장#주차장 카멜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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