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수확량 급감 예고… 글로벌 밀 파동 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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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산 밀가격 3주새 20% 급등… 피해 장기화땐 수출제한 가능성
2007년 최악 곡물파동 재연 우려

지구촌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이 세계 곳곳의 밀 재배지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럽연합(EU)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주요 밀 생산국들이 올해 수확량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고 있다. 중동, 아프리카 빈곤국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7년 ‘글로벌 곡물 파동’ 당시 수준까지 밀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곡물시장 전략연구소 스트래티지 그레인스는 세계 최대 밀 생산지역인 EU 28개 국가의 올해 총 수확량이 1억3000만 t 이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스트래티지 그레인스는 “올해 EU 밀 수확량은 201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모두 올여름 기온이 40도를 넘는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고 이는 농가 피해로 이어졌다. 독일의 올해 밀 수확량은 전년 대비 12% 감소한 2100만 t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곡물연구소 아그리텔은 “올해 독일 밀 수확량은 최근 5년 평균치보다 16% 감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최근 농민단체들이 정부에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의 긴급 구호자금을 요청했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7월 강수량이 평년의 10∼15%밖에 안 될 만큼 심한 가뭄에 시달린 스웨덴과 최근 두 달간 비가 내리지 않은 영국 등도 5년 내 가장 적은 수확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마치 글로벌 식량 위기를 불러온 2007년의 ‘곡물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2007년 당시 주요 곡물 생산국들은 기상 이변으로 밀 보리 등의 수확량이 감소하자 수출량을 제한하거나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세계 곡물 가격이 2∼3배 상승하면서 중동 아프리카 등의 빈곤국들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었다. 실제 벌써부터 유럽 내에선 밀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달 초 유럽산 밀 가격은 t당 248달러 선에서 거래됐는데 최근 5년 새 최고 가격이자 3주 사이 20% 가까이 오른 값이다.

밀 가격이 세계적으로 상승 조짐을 보이자 밀 소비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비상이 걸렸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가 대표적이다. 통밀 반죽을 화덕에 구워낸 ‘아이시’를 거의 매끼 먹는 이집트인들에게 밀 가격 상승은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한 해 밀 소비량의 60%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밀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총 136만 m²에서 밀을 재배했다. 2016년(121만 m²)보다 15만 m²를 넓힌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 역시 폭염의 위력을 피하지 못해 밀 수확량이 크게 떨어졌다. 4월 수확기가 시작됐을 당시만 해도 이집트 정부는 올해 약 400만 t 이상의 밀 수확을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수확량은 310만 t에 불과하다.

EU와 중국 등의 밀 수확량이 감소한 데 반해 폭염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미국은 올해 큰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들은 “올 11월 정도에는 (밀 가격이 더 올라) 미국 농민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폭염#수확량 급감 예고#글로벌 밀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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