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정확하게 고쳐라”… 한국, ‘정비 월드컵’ 판금 준우승 파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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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볼보 비스타대회 현장

2018 볼보 비스타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볼보 아주 오토리움 안양서비스센터 이조원 임윤진 주인철 선수(왼쪽부터)가 볼보 차량의 문을 진단하라는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예테보리=변종국 기자 bjk@donga.com
2018 볼보 비스타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볼보 아주 오토리움 안양서비스센터 이조원 임윤진 주인철 선수(왼쪽부터)가 볼보 차량의 문을 진단하라는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예테보리=변종국 기자 bjk@donga.com
“국가별 자존심이 걸린 경기라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었습니다.”

12일(현지 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토슬란다에 있는 볼보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2018 볼보 비스타(볼보 서비스 경진대회) 결승전 현장. 한국 대표 이조원 선수는 이렇게 대회 분위기를 전했다. 볼보 비스타는 볼보차 정비기술 전문가들이 벌이는 기술경진대회다. 1975년부터 국가별로 진행해온 대회인데 2년 전부터는 국가별 1등 테크니션들이 스웨덴 볼보 본사에 모여 또 한번 실력을 겨룬다. 올해가 2회째 되는 국제 기술 월드컵인 셈이다. 이번 대회엔 41개국에서 150여 명이 참가했다.

대결 종목은 자동차 내부 문제를 진단하고 고치는 일반정비와 차량 외부 및 조작 문제를 해결하는 판금으로 나뉜다. 종목별 3인으로 구성된 팀이 모두 4개의 문제를 푼다. 문제당 제한 시간은 22분이지만 정확하고 빠르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동점자가 발생하면 문제를 빨리 푼 쪽이 이기기 때문이다.

대회장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고 그 안엔 볼보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차량들이다. 일반정비 한국 대표인 아주 오토리움 안양서비스센터 이조원 임윤진 주인철 선수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말조차 걸 수 없을 정도였다 “아 유 레디?(준비됐나요?)”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은 초시계를 눌렀다. 이들은 문제를 6분 만에 풀었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교체하고 페달 볼트와 퓨즈 등 문제 부품을 찾아내는 문제였다. 임 선수는 “해볼만 한데?”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점점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엔진 실린더 밸브의 두께를 측정하는 문제, 자동차 스마트키를 인식하는 센서의 문제를 파악하는 문제도 나왔다.

자동차 내부를 완벽히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도 나왔다. 내부 배선 도면을 펼쳐 놓고 부품을 찾으라는 문제, 자동차 문을 작동시키는 배선들이 각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묻는 문제들은 선수들을 골치 아프게 했다. 대회 관계자는 “자동차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라고 말했다. 옆 칸에 있던 일본 팀은 뭔가 착오가 생긴 듯 의견을 주고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판금 종목은 찌그러진 외관을 고치는 기본 문제가 나왔다. 판금 한국대표 H모터스 성수서비스센터 오병문 문병원 김준수 선수는 쉽게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한국시장에 곧 출시될 예정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볼보XC40의 헤드램프를 교체하라는 문제가 나온 것이다. 오 선수는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은 차라 당황했지만 기본원리는 같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교체와 호환작업까지 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배터리가 방전이 돼 기어가 작동하지 않는 차를 움직이게 하라는 문제도 나왔다.

15일 발표된 최종 결과에서 한국 대표팀은 대이변을 연출했다. 판금 종목에서 스웨덴에 이어 세계 2위(13개국 중)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 대회 11위를 했던 판금 분야의 성적이 수직 상승한 것이다. 일반정비는 지난 대회와 같은 14위(41개국 중)에 올랐다. 한국대표팀을 총괄한 볼보코리아 김준의 대리는 “내심 3위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서비스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순위별 격차는 1, 2점에 불과했다. 몇 초만 더 빨랐어도, 한 문제만 더 맞혔어도 순위가 크게 바뀔 수 있었다.

1위에게는 트로피가 주어진다. 별도의 상금은 없다. 볼보가 30년 넘게 비스타대회를 여는 이유는 뭘까. 볼보는 2년 전부터 개인전담서비스제도(VPS)를 도입해 운영하는 등 정비 기술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의료계의 주치의 개념을 차용한 것인데 전담 테크니션이 직접 고객 예약에서부터 차량 점검, 수리, 차량 인도까지 일괄 관리하는 것이다. 볼보코리아는 VPS는 물론이고 점검 속도를 높이기 위해 2인 1조로 정비팀을 꾸려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세프 고스텐 볼보 비스타 총괄책임자는 “대회를 하면 국가별 수준차가 보이기 때문에 정비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디에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며 “상금은 없지만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자부심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예테보리=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정비 월드컵#판금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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