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물질 낮추는 정유공장 240km 파이프… 환경-수익 동시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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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미래다] <13> 1조원 들여 탈황설비 짓는 SK

울산 남구 SK울산콤플렉스 내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RDS) 공사 현장. SK는 국제적 환경규제 강화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SK에너지 제공
SK그룹의 에너지화학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16년 10월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한다.

당시 해운업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 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추진됐는데 이를 계기로 회사가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규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환경 보전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이뤄낼 기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 1월부터 세계 선박 연료유의 황 함량 규제 기준을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하기로 그해 결정했다. 이른바 ‘IMO 2020’으로 불리는 규제이다. IMO는 해상 안전과 해양오염 방지를 책임지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 황 함유량이 높은 선박 연료유가 대기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수용한 것이다. 선박 연료유는 육상에서 사용되는 경유나 휘발유보다 황 함유량이 높아 연소 과정에서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황을 많이 배출한다.

당시 그룹 내에서는 SK가 친환경 미래 산업을 선점하고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SK이노베이션은 그룹 차원의 논의를 거쳐 2017년 10월 1조 원을 투자해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짓기로 전격 결정했다. VRDS는 이 감압 잔사유에 수소를 첨가해 탈황 반응을 일으켜 저유황유 또는 디젤 등 고부가 유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생산 설비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원유를 재가공해 고부가가치 연료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 결정은 평소 환경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최 회장은 2014년부터 기업의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 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을 주제로 베트남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룹의 힘을 합쳐 몰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초 찾은 SK울산콤플렉스(SK울산CLX) 현장은 거대했다. 여의도 3배 크기(826만 m²)인 울산CLX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단지이자 SK이노베이션 에너지 부문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 한구석에는 길이 900m, 폭 130∼140m의 VRDS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를 진행하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 심원엽 울산프로젝트리더(PL)는 “하루 생산 규모가 4만 배럴에 이르는 이 설비가 가동되면 SK이노베이션은 국내 1위 선박용 저유황유 공급자로 발돋움한다”면서 “이 저유황유는 대부분 해상 선박 연료로 사용된다”고 했다.

기자가 SK안전센터 옥상에 올라서니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철근 구조물로 배관 공사를 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정유공장에서 1차 처리된 잔사유가 3개의 원료탱크에 모였다가 이 파이프라인을 따라 돌면서 황이 제거되는 것이다. VRDS에 들어간 파이프라인 총 길이만 240km로 북한산 백운대 해발 고도의 287배 정도 된다.

VRDS의 핵심 시설인 반응기(원료유에 수소를 첨가해 탈황시키는 기계)는 6월까지 총 8개가 설치될 예정이다. 바로 옆에는 수소를 만들어 공급하는 시설도 지어지고 있었다.

내년 2월에 준공할 예정인 VRDS 공사는 전체 공정 가운데 약 60%가 진행됐다.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앞당겨졌고 상업생산은 내년 4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IMO 2020 규제가 당장 내년으로 다가와 저유황중유 공급 일정이 빠듯하다”며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SK의 친환경 미래 산업은 전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트레이딩 전문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도 지난해부터 저유황유 사업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TI는 국제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저유황중유보다 황 함량이 낮은 초저유황중유(황 함량 0.1% 이하) 물량도 2배 이상 늘렸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VRDS 설비 투자로 만만치 않은 경제적 가치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전 세계 선박에 사용되는 중유 가운데 70%가 황 함량 3.5% 이상의 고유황유여서 당장 내년부터 저유황유 공급량이 달릴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업계는 저유황유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이 2020년부터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3000억 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상에서 SK이노베이션, 해상에서 SKTI로 저유황유 공급에 적극 나선다는 게 SK의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그룹 차원의 환경 문제 해결 노력은 계열사 및 관계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업종의 특성에 맞게 회사마다 신기술 개발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을 통한 환경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울산=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sk이노베이션#탈황설비#정유공장#친환경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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