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면세점 직원 “화장실 좀 씁시다”…인권위 진정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22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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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화장실 멀고 적어…방광염 등 시달려
"양치하면서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기도"
"작년 노동부 개선 요청에도 변화 없어"
"인간 기본권 침해 행위…시정조치 돼야"

#. 백화점에서 화장품 매장 판매직으로 10년 넘게 근무해 온 A씨는 몇 해 전부터 방광염과 질염 등에 시달리고 있다. A씨에 따르면 직원들은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객용 에스컬레이터도 못 쓰고 계단을 통해 지하나 다른 층에 있는 직원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또 A씨는 직원이 적어서 매장을 비워두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참다가 화장실에 가면 다른 매장 사람들까지 몰려서 제때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식사시간 같은 때도 (사람이 많아서) 양치를 하면서 화장실 칸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백화점·면세점 서비스 노동자들이 ‘공중 화장실을 쓰게 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22일 진정서를 제출했다. 유통기업 서비스 노동자들이 본사 측 규정 탓에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방광염에 시달리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은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은 22일 이날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의 기본적인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대한민국 인권지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즉각 시정조치가 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비스연맹은 이번 인권위 진정이 지난해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의 건강권 관련 연구결과가 발표된 뒤 고용노동부가 개선 요청을 각 기업 측으로 전달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는 화장실 사용 어려움 관련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로 발표됐다. 본사 측의 ‘고객용 화장실 이용 금지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은 전체 조사 대상자 중 77%가 넘었고, 화장실 이용 어려움으로 방광염이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에 비해 3.2배나 많이 발병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이후 노동부는 관련 개선요청을 각 백화점과 면세점 측으로 전달했고, 서비스연맹 측도 이와 관련한 입장을 각 기업에 요청했지만 롯데·현대·신세계 등의 유통기업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한화갤러리아 한 곳만 이와 관련한 답변서를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언에 나선 김광창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우리도 화장실 좀 가고 싶다, 이런 주제로 기자회견을 할 만큼의 나라인가, 이것이 현실인가 참담함을 안고 여기 섰다”면서 “백화점, 면세점에 근무하는 입점업체 노동자들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층마다 있는 화장실을 쓸 수 없다. 이들은 누구나에서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용 화장실은 수가 적고 멀어서 참아가며 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아프다”면서 “기업들은 고객들이 싫어한다며 사용을 막고 있는데, 감정노동 문제처럼 고객 인식 개선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비스연맹 측은 이날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앞서 갖가지 사례들도 발표했다.

집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은 “고객용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 백화점 측 담당과 마주했는데, 어디 직원이냐 물어보면서 고객화장실 이용하면 안 되는 거 모르냐고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연우 한국시세이도 노조위원장은 “생리대도 제때 교체를 못해 피부염에 시달리고, 임산부들도 무거운 몸 이끌고 힘들게 화장실에 다녀온다”면서 “백화점에서 무언의 압력으로 사용을 못 하게 하고,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과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저희 요구가 무리한 건가”라며 “저희도 더 이상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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