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투명성 높였지만 위기대처 제약 우려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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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년부터 달러 순매수액 공개

한국이 17일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수출 경쟁력을 높여왔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의심을 불식하기 위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하면 해외에서 달러화로 표시된 한국 제품의 가격이 싸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보유 외환을 동원해 환율을 조정했다고 미국은 의심해왔다.

○ 더 미룰 수 없었던 시장공개

실제 미국 재무부는 2016년부터 자국의 환율보고서에서 5번 연속으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외환시장 개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국 정부는 그때마다 환율 변동은 시장에 맡기고 급격한 쏠림이 있거나 투기세력의 공격이 있을 때만 미세조정을 한다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기조를 강조했다. 불가피할 때만 개입하는 것이지 환율 조작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어떤 수준까지 만들어야겠다는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보유 외환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이렇게 미국의 요구가 거세진 데다 올 상반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합류하려면 외환시장을 공개해야 한다는 가입 요건도 충족해야 했다.

실제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공개 방침을 정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공동선언문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공동선언문은 각국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를 매 분기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조치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투명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 투기세력 공격에 대비해야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주기가 길고 순매수 내용만 공개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부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6원 오른 달러당 1081.2원으로 마감해 정부의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 발표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환 거래의 결과물인 순매수액만 공개하도록 한 것이 성과라고 평가했다. 매도, 매수 내용을 일일이 공개한다면 한국 정부의 외환 운용 방식이 낱낱이 드러나 투기세력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홍콩은 매일 달러 매수액과 매도액을 구분해 공개한다. 영국과 일본, 캐나다 등 가장 많은 국가가 택한 방식은 매월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수준이 미국의 요구보다 낮은 만큼 추가 공개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잘한 건 순매수액만 공개하기로 한 부분인데, 바꿔 말하면 미국 등에서 1, 2년 후에 총매수 및 총매도 금액과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외환시장에 위기가 닥쳤을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패턴이 공개되는 만큼 글로벌 투기세력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정교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은 “외환시장 위기 가능성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도록 미국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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