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같이 아름다운 산악마을… 도전 자극하는 알피니즘의 고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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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티롤 알프스

산 중턱 초원의 레스토랑 플라뇌첸호프의 정원. 언덕 아래로 인스브루크가 보인다. 인스브루크=조성하 전문기자
산 중턱 초원의 레스토랑 플라뇌첸호프의 정원. 언덕 아래로 인스브루크가 보인다. 인스브루크=조성하 전문기자
‘유럽의 지붕‘ 알프스. 동서 1200km에 걸친 이 산맥은 무려 7개국에 걸쳐 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슬로베니아(서→동)다. 그런데 그중에도 오스트리아는 특별하다. 19세기 후반 본격화된 알피니즘(Alpinism·산악등반)의 발상지라서다. 저명한 알피니스트(등반가) 상당수가 여기 태생이고 스키도 당시엔 알피니즘의 일부여서 알파인스키 역시 여기서 시작됐다. 이 사실은 곧 이런 설명을 가능케 한다. 오스트리아 산악이 알프스의 그 어디보다도 이런 도전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거기서도 알피니즘의 고향은 올챙이 모양의 오스트리아 지도에서 꼬리 부분인 서단의 티롤주(주도 인스브루크)다.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과 국경을 맞댄 곳으로 ‘티롤알프스’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배출된 전설의 산악인 중 가장 이름난 이는 헤르만 불(1924∼1957)이다. 그는 무려 31명의 목숨을 앗아간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봉(8126m) 초등자. 그것도 혼자 이뤄냈는데 등반 역사상 8000m급 산악 나 홀로 등반 최초의 사건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고향 인스브루크

인스브루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고도 잘츠부르크 서쪽의 티롤알프스 중심. 알프스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어도 인스브루크처럼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길이 트인 곳은 없다. 그런 인스브루크의 지정학적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있다. 유럽 왕실 중에 그 영향력이 가장 컸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다. 이 왕실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재위 1493∼1519년)는 인스브루크에 궁정을 짓고 서부 유럽 진출을 도모했다.

사진 속 절벽의 정상은 티롤알프스 카르벤델산맥의 2000m급 암봉과 능선. 해발고도 1270m의 엥알름 초원은 절벽에 동그랗게 
둘러싸인 분지로 산에 내린 눈이 쏟아져 내려 6∼9월 넉달만 사람과 소의 접근이 허용된다. 벤치 뒤편의 큰 나무가 유럽 
단풍나무다. 엥알름=조성하 전문기자
사진 속 절벽의 정상은 티롤알프스 카르벤델산맥의 2000m급 암봉과 능선. 해발고도 1270m의 엥알름 초원은 절벽에 동그랗게 둘러싸인 분지로 산에 내린 눈이 쏟아져 내려 6∼9월 넉달만 사람과 소의 접근이 허용된다. 벤치 뒤편의 큰 나무가 유럽 단풍나무다. 엥알름=조성하 전문기자
그런 합스부르크왕가의 필살기는 결혼 전략이었다. 이 가문의 여성들이 다산의 특장을 지닌 덕분. 프랑스혁명 중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도 합스부르크왕가의 프란츠 1세(신성로마제국 황제)와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의 막내. 그 결혼도 오랜 숙적 프랑스와 동맹하기 위한 정략이었다. 인스브루크의 상징인 ‘황금지붕(Golden Roof)’은 그런 막시밀리안 1세의 빛나는 유물이다.


티롤알프스의 보석 제펠트

인스브루크는 티롤알프스의 계곡에 깃든 도시다. 그 계곡으로는 독일-오스트리아 국경의 능선에서 발원한 인(Inn)강이 흐르는데 ‘인강의 다리’라는 이름은 거기서 왔다. 그런데 이 계곡 역시 알프스 판박이다. 동서로 10km나 이어져서다. 도시는 이 긴 계곡 전체를 아우른다. 그런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계곡 남사면의 언덕 중턱(해발 700m)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겸 레스토랑 플라뇌첸호프다. 농장을 겸한 이곳에선 100년 넘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목재(소나무)로 지은 모던한 별관, 잔디밭과 정원의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긴다. 그 잔디밭 아래로 인스브루크 계곡이 훤히 조망된다.

제펠트는 인스브루크 중앙역에서 자동차로 30분(25km) 거리의 산중 호반 휴양지. 중심은 호수 주변에 예쁜 알프스샬레(전통 목조주택)가 옹기종기 모여 형성된 마을. 거길 관통하는 한길은 걸어서 10분이면 다할 만큼 짧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상점이며 꽃으로 장식된 테라스의 샬레호텔과 레스토랑, 하얀 건물의 가톨릭성당과 광장의 나무 그늘 벤치, 성모마리아 분수를 살피노라면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만치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렇듯 제펠트는 한가로이 산책하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외곽의 산과 들에 여러 어트랙션이 포진한다. 알펜바트(온천)도 그 하나다. 실내외 온천 풀엔 선베드가 놓여있고 튜브 미끄럼틀에선 아이들이 논다. 다양한 세러피의 스파와 핀란드사우나도 있고 티롤 전통 음식에 오스트리아 와인을 내는 레스토랑도 훌륭하다. 숲속 산기슭 초원엔 바퀴로 경사를 타는 알파인루지 트랙이 있고 골프 코스도 2개. 요즘 알프스에선 전기자전거 투어가 인기다. 주변 20km 이내를 힘들이지 않고 섭렵한다. 인근 로이타슈(해발 1136m)는 알프스의 맑은 공기를 흡입할 매력적인 마을. 천국처럼 아름다운 산중마을인데 거기서도 모스(Moos·이끼)마을은 분지의 초원. 우리가 꿈꾸는 알프스 마을 모습 그대로다.

제펠트는 해발 1180m의 산중 고원이라 눈도 많이 내린다. 그리고 눈 덮인 한겨울의 제펠트는 한여름 초록 세상과 완벽히 다른 모습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시작하는 크리스마스캐럴의 장면 그대로다. 그런 제펠트는 알파인스키와 더불어 노르딕스키를 즐기는 겨울 휴양지. 내년 2월엔 노르딕 세계스키선수권대회도 열려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오지의 절벽마을 엥알름… 차라리 단풍나무이고 싶다▼


알프스엔 알프스만의 문화가 있다. 샬레(Chalet)와 낙농이 그것이다. 샬레는 유럽 산악의 목조주택인데 적당한 경사의 큰 지붕과 정면으로 길게 돌출한 처마가 특징이다. 낙농은 치즈, 버터, 햄, 고기를 얻기 위한 알프스 초원의 가축(소, 양, 염소) 사육. 그런데 한여름 알프스 관광지에선 소를 보기가 힘들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옮겨서다. 한여름 목초지가 ‘알름(Alm)’인데 알프스 산악의 독특한 유산이다. 목장초지의 풀은 한겨울에 먹일 식량(건초). 그래서 소를 오지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알름도 지역마다 다르다. 가파른 산악의 스위스에선 고지대인 데 반해 평지계곡이 발달한 오스트리아에선 계곡이다. 그런데 인스브루크에서 멀지 않은 엥알름(Eng Alm)은 알름 중에도 지독한 오지의 별천지. 얼마나 깊은 산중인지 인스브루크 주민 중에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독일어 ‘엥(Eng)’은 ‘가파르다’로 엥알름 계곡은 수직으로 수백 m 절벽의 봉우리 아래 동그랗게 에워싸인 분지 형국. 그렇다 보니 미세 기후가 형성돼 독특한 식물상을 보인다. 희귀한 유럽 단풍나무 군락이다.

유럽 단풍나무는 1만 년 전 끝난 지구 마지막 빙하기의 유산이다. 그런데 공해와 온난화로 유럽 대륙에서 사라진 지 오래. 이 엥알름이 유일해 천연기념물로 보호 중이다. 지도를 보면 엥알름과 인스브루크가 지척간이다. 하지만 그 사이는 카르벤델 산맥. 그래서 제펠트를 경유해 우회해야 하는데 서편으론 90km, 아헨호수를 지나는 동편 길로는 105km 거리. 엥알름을 찾는 루트는 기막힌 여로였다. 산중 계곡과 호수를 지나고 범람지 강을 따르는데 내내 티롤알프스의 산경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나는 인스브루크에서 동편 루트로 엥알름을 찾은 뒤 서편 루트로 돌아왔는데 카르벤델 산중도로는 내내 부드러운 커브의 곡선주로. 운전 중에 비틀스의 노래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를 흥얼댄 건 그 덕분이었다. 그런 유쾌한 드라이빙 끝에 다다른 엥알름. 고도 1270m의 계곡 막장은 찌들어 빠진 세상과 완벽히 다른 세상이었다. 천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기는 상큼했고 풍광은 신비로웠다. 인기척마저 드물어 산중초원에서 들리나니 오직 풀 뜯는 소 목에 걸린 방울 소리뿐이었다. 하이킹객도 간혹 한두 명 보일 정도. 초원엔 간간이 나무가 서 있는데 그게 유럽 단풍나무다. 수백 년생 아름드리도 있고 그 옆에 어린 나무도 있다.

엥알름 입구엔 호텔도 있다. 그리고 걸어 들어간 절벽 막장(해발 2700m급 산봉 밑) 초원엔 샬레 레스토랑과 산장이 치즈 공방과 붙어 있다. 엥알름 초지의 소에서 짜낸 신선한 우유가 재료다. 식당 음식도 물론 그걸로 만든다. 주변엔 하이킹 트레일도 여럿이고 도중엔 산장도 있다. 그런데 이 엥알름에서 사람과 소를 볼 수 있는 건 6∼9월의 넉 달뿐. 나머지 기간엔 눈에 덮여 있다. 엥알름에선 9월부터 가을. 유럽 단풍나무의 변색은 어떨지 궁금하다. 숙박 등 상세 정보는 홈페이지 참조.

엥알름(티롤)=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 정보

렌터카 여행: 뮌헨∼인스브루크∼제펠트∼엥알름∼뮌헨 코스

항공로: 인천∼뮌헨(루프트한자항공) 이용

거리: 뮌헨∼인스브루크 148km / 인스브루크∼제펠트 25km / 제펠트∼엥알름 65km / 엥알름∼인스브루크 106km(아헨호수 경유) 혹은 90km(제펠트 경유) / 엥알름∼뮌헨 110km
#티롤 알프스#엥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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