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고택 ‘구름에’ 그곳에서 보낸 하루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8월 24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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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한 장, 마당의 흙 한 줌에도 옛사람과 전통을 이어온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터운 세월이 주는 멋스러움과고급 호텔에서 느끼는 편안함.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 한옥 호텔 ‘구름에’를 다녀왔다.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였던 7채의 고택. 안동시의 노력으로 수몰만은 피했지만, 여기저기로 옮겨지며 고택으로서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채 약 30년이 넘게 방치됐다. ‘구름에’는 2014년 흩어져 있던 고택을 경북 안동 성곡동 민속촌의 언덕배기로 옮겨 전통 리조트로 만든 곳이다. 이로써 최소 200년에서 400년까지의 역사를 지닌 고택은 각각의 사연을 품고 군락을 이루게 됐다.

퇴계 이황의 8세손 이귀용이 1800년대 지었으며 안동시의 문화재로 등록된 계남고택, 조선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지가 학문 수양을 위해 1600년 초에 건립했다는 박산정, 퇴계의 9대손이자 조선 후기 문신 농와 이언순이 지은 정자 서운정 등 사라질 뻔한 유서 깊은 고택들이 품격 있는 숙박 시설로 재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단체의 도움과 노력이 있었다. 경상북도와 안동시, SK행복나눔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연합해 사회적기업인 ‘행복전통마을’을 설립했고, 고택을 활용한 숙박 및 전통문화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한옥은 전통에서 현대로 거취를 옮겨왔다.

수몰 위기의 고택을 ‘구름에’라는 숙박 시설로 활용하게 된 것도 행복전통마을의 노력 덕분이다. 이들은 안동 지역의 고택을 보수·관리하여 숙박이 가능하도록 만듦으로써 한옥 호텔의 기반을 닦았다. 또한 지금까지 전통문화 이미지 개선을 위한 체험 사업 등을 추진하며 현대인들이 우리의 고유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혹자는 고택은 문화재로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고택은 금방 낡고 좀이 슨다. 구름에는 고택의 외형을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시설로 리모델링해 현대인에게 전통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구름에는 안동의 취약 계층을 고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착한 취지로 출발했다. 호텔 사업을 통한 수익은 다시 행복전통마을로 돌아가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사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한옥의 원형에 편리함을 더하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위로 구름이 자주 걸터앉는 이곳. 그 모습을 보니 왜 ‘구름에’라고 이름 붙여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구름에는 7채의 고택 중 4개의 독채를 포함해 총 12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규모에 비해 객실이 많지 않은데 여기에는 방을 여러 개로 쪼개고 나눠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이용객들이 고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유롭게 머물다 가기를 바라는 깊은 배려가 담겨 있다.

200년은 거뜬히 넘었다는 대문 앞에 서면, 그 옛날 이 동네의 어느 선비가 가문의 안녕을 빌며 썼을 ‘입춘대길(立春大吉)’과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각 고택마다 붙어 있는 현판은 세월의 무게와 웅장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문을 열면 ‘ㄷ’ 혹은 ‘ㅁ’ 형태의 마당이 아늑하게 반겨주고, 완벽하게 정돈되진 않았지만 아담한 정원도 내 것 인 양 싶다. 이것이 바로 구름에의 매력이다. 세월이 묻어 있는 이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것 말이다.

툇마루에 앉아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택 안에 있는 것이 상상처럼 아득하다가도, 하얀 타일로 깨끗하게 정돈된 건식 욕실을 사용할 때는 ‘이곳이 호텔이었지!’라고 깨닫게 된다. 고급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월풀 욕조가 구비된 고택도 있는데 이곳은 한층 더 모던한 느낌이 든다.

구름에가 리조트로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듯 한옥의 불편함을 현대식 기술로 깔끔하게 숨긴 점이다. 화장실을 객실 내로 들였고, 스마트 키는 물론 냉난방 시설을 완벽히 구비했으며, 간접 조명으로 한옥의 아늑함을 살렸다. 또한 문풍지를 타고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창가에 슬라이드형 유리문을 덧댔다. 24시간 당직 지배인이 상주하고, 벌레의 습격을 대비해 이틀에 한 번 방역을 하며, 짐을 들어주는 도어맨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단지 내에 레스토랑, 체력 단련실, 북 카페까지 있다.

안동 지역 전통 스타일로 제공되는 개인별 조식 서비스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근에서 직접 수확한 쌀로 지어 유기그릇에 담아내오는 밥과 국, 조물조물 무친 제철 나물을 먹노라면 특급 호텔 조식과는 다른 멋과 정성에 감탄하게 된다.

한옥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 늘어가는 요즘. 특히 이번 휴가 시즌에 구름에를 예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말은 내내 만실이었다. 만일 여름에 구름에 방문을 놓친 사람이라면 가을을 노려보자. 한옥의 진정한 매력은 가을·겨울에 있다고 할 정도로 그 정취 또한 아름다우니!

한옥은 멋이 있는 공간이다. 전통이라는 그릇에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구름에는 고택의 멋을 제대로 즐기기에 제격이다.

시간이 멈춘 곳


아침이 되자 편안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걸어갔다. 행복전통마을에서 운영하는 ‘구름에 오프(Gurume Off)’ 북 카페였다. 고택 단지의 전경을 마주 볼 수 있도록 통유리로 지어진 그곳에 들어가자 고택의 지붕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우아한 풍경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찔했다.

주문을 하려고 부랴부랴 메뉴판을 찾던 때였다. 종업원이 따뜻한 말투로 “천천히 고르세요”라고 하는데, 얼마 만에 듣는 ‘천천히’라는 말인지. 커피 마실 때조차 뒷사람 눈치 보느라 서둘러 주문하던 도시에서의 생활은 왜 그리 급하기만 했는지. 여유로운 지금에야 그 시간을 반성한다. 그리고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시간에 감사했다.

올해 7월 오픈한 북 카페에는 1천5백 권의 도서가 구비되어 있고 커피와 다과 등을 판매한다. 대표가 직접 블렌딩한 원두커피도 수준급이고 안동의 특산품인 마를 갈아 만든 주스도 특색이 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곳 북 카페의 풍경이다. 고택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의 풍경과 고요함을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운영 시간은 오후 9시까지다. 저녁에 방문하면 불 켜진 고택의 고즈넉한 풍경이 덤으로 주어진다.

구름에에서는 전통 방식 그대로를 재현한 고추장 제조나 가양주 체험, 예비 부부들을 위한 웨딩 촬영 등도 진행하고 있다. 가족 단위의 이용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 중이라고 하니, ‘요즘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전통’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2~3대가 함께 모여 살던 고택은 단체 손님이 머물기 좋고 제사를 지내던 곳은 대가족이, 학문을 닦던 고택은 소규모 가족이 이용하기 알맞다.

구름에는 단순한 한옥 호텔이 아니다. 이제는 옛것이 된 것만 같은 ‘충(忠)’ ‘효(孝)’와 같은 사상을 배우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법을 깨닫다 보면 머무는 사람도 한층 성장하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가을, 고택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누구에게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수백 년간 고택을 지켜온 나무 기둥에 기대고, 들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며 무거웠던 우리의 몸과 마음이 조금은 정화되기를.
editor 서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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