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떠나 이젠 널찍한 ‘평상’ 될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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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장 마친 구룡사 정우 스님

“널찍한 ‘평상’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오다가다 쉴 수 있게. 큰 아름드리나무 그늘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평상을, 매일 쓸고 닦는 거라오.”

최근 찜통을 뒤집어쓴 듯한 더위에 헉헉대며 도착한 서울 서초구 구룡사 앞마당엔 진작부터 정우 스님(65·구룡사 회주·사진)이 나와 있었다. “더운데 뭘 여기까지…”라며 연신 손부채를 부쳐주더니, “젊은 사람들은 이런 커피를 좋아하지”라며 냉장고에서 이까지 시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거참, 땡볕을 타박했던 속내가 짐짓 부끄러웠다.

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으로 쉼 없이 달려왔던 정우 스님은 지난달 27일 드디어 4년 임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군종교구장으로 그가 세운 공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영내 법당 100곳 이상을 짓고 고쳤으며, 불자장병 수계법회를 지나간 이는 12만 명이 넘는다. 2014년엔 비구니를 군종법사로 뽑아 국내 종교 최초로 여성 군종장교를 배출했다. 그런데 정작 스님 맘에 제일 깊이 남은 건 따로 있었다.

“전국에서 만난 장병들의 눈망울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4년 내내 장갑이랑 초코파이, 핫팩 싸들고 무던히도 돌아다녔지. 시간만 되면 꼭 짜장면을 같이 먹었어요. 불제자면 어떻고 아닌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도 1973년 현역 입대해 그때 심정 다 알지.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오.”

임기 동안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경기 파주시의 ‘JSA(판문점 남북공동경비구역) 무량수전’ 건립도 스님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다 이뤄질 일이 불력(佛力) 따라 흐른 거란다. 올해 3월 완공했는데 ‘참 묘하다’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법당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 전사자의 위패를 봉안했습니다. 근데 그 위로 난 쪽문이랑 높이를 맞추려고 길이를 쟀더니 딱 62.5cm인 거라. 더 신기한 건 법당 앞 종각에 ‘평화의 종’도 봉안했는데, 이게 만들고 보니 의도치 않게 무게가 625관(약 2344kg) 아니겠소. 또 한번 깊이 머리를 조아릴밖에.”

요즘 스님은 해질녘이면 하루 1, 2시간씩 마을을 걷고 있다. 올해 초부터 꾸준히 걸었더니 체중도 10kg이나 빠졌단다. 열심히 운동하는 까닭? 잡념도 없애주지만, 너무 뻔하게도 건강 때문이다. 그런데 스님이 이렇게 몸을 챙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곧 자신이 출가하고 주지도 지냈던 통도사로 내려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여기 구룡사가 1980년대 천막 법당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맨손으로 일군 ‘가장으로서의 집’이라면, 통도사는 내 모든 시작의 뿌리이자 고향인 셈이라오. 고맙게 그쪽에서도 거처를 마련할 테니 얼른 오라고 합디다. 다 필요 없고 일신이 머물 제일 구석 쪽방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 가서 남의 신세 안 지려면 뭣보다 몸이 튼튼해야 하지 않겠소. 괜히 특별 대우할 생각 말라고 미리 으름장도 놔뒀습니다. 똑같이 마당 쓸고 텃밭 돌보고 다 해야죠. 그게 진짜 ‘평상’이 되는 길이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구룡사 정우 스님#군종교구장#jsa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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