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만 49년… 산소자리 봐 놨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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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 50주년 금경축 맞은 ‘빈자의 친구’ 안광훈 신부

안광훈 신부가 6·25성골롬반 순교기념비에서 자신과 성이 같은 패트릭 브레넌 신부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7명의 신부가 순교했다. “패트릭 신부님과 제가 같은 성이라 그분의 한국 이름 중 안 씨 성을 물려받았죠. 광훈은 옛날 한국말 배울 때 친구들의 작품입니다.” 최혁중 기자 ajinman@donga.com
안광훈 신부가 6·25성골롬반 순교기념비에서 자신과 성이 같은 패트릭 브레넌 신부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7명의 신부가 순교했다. “패트릭 신부님과 제가 같은 성이라 그분의 한국 이름 중 안 씨 성을 물려받았죠. 광훈은 옛날 한국말 배울 때 친구들의 작품입니다.” 최혁중 기자 ajinman@donga.com
《 “떠나긴 어딜 떠나요? 죽으면 가려고 베론 성지(충북 제천)에 산소 자리 봐 놨습니다. 거기에 원주 교구 성직자 묘소가 있는데 교구장인 김지석 주교 허락 받아놨어요.”(웃음) 뉴질랜드 출신으로 사제 서품 50주년인 금경축을 맞은 안광훈(본명 로버트 브레넌·74) 신부의 말이다. 9일 서울 동소문로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 만난 그는 ‘삼양주민연대 대표 안광훈’이고 쓰인 명함을 건넸다. 사제들의 상징으로 알려진 로만 칼라도 없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66년 25세 때 한국에 온 그는 강원 정선과 서울 목동, 삼양동을 중심으로 빈민사목 활동을 펼쳐 ‘빈자의 친구’로 불려 왔다. 지난해에는 이 공로로 아산상을 받기도 했다.》
―평소 사제복은 입지 않나요.


“지난해 공항으로 교황님 만나러 갔을 때와 아산상 수상, 금경축 행사…. 1년에 한두 차례 입어요. 유니폼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구분이나 특권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어 입지 않습니다.”

―서품 50년 소감은 어떻습니까.

“세속의 은혼식, 금혼식처럼 성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데 큰 의미는 없어요. 어쨌든 돌이켜보니 그 세월 다 어디로 갔나 싶어요. 허허.”

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조촐한 금경축 행사에서 밝힌 그의 소감은 큰 박수를 받았다. “하느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나를 ‘배달의 민족’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 MC가 마지막 질문으로 후회 없냐고 했는데, 지금 답할 수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표현을 보고서 조금 놀랐어요.

“그 의미 알아요. 사람들에게 제 마음 전하고 싶어 조금 공부했죠.”

―한국에서 첫 인연을 맺은 곳이 원주 교구인데요.


“당시 우리 선교회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곳이 전남과 강원도였어요. 그때 원주 교구가 분리되고 젊은 주교(지학순 주교·1921∼1993)가 계셔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요. 정선 아리랑, 아우라지, 사람들의 순박한 인심은 잊을 수가 없어요.”

―여러 번 영향을 받은 인물로 지 주교를 꼽았는데….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정말 그래요. 그분은 주교의 권위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분이었죠. 예전에 ‘강가에 자리 잡고 개 한 마리 준비했는데 오세요’ 하고 전화하면 어떻게든 시간 내서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1970년대 독재에 맞서다 구속될 정도로 양심의 소리에도 충실한 분이셨죠.”

―빈민현장에서 본 한국의 50년은 어떤가요.


“‘변한 것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해야죠. 고속철도(KTX), 고속도로, 넘쳐나는 물건들…. 한국 사회는 외형적으로 크게 바뀌었지만 그 속의 빈부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어요. 과거에는 산동네, 달동네라고 해서 이 격차가 겉으로 드러났지만 요즘에는 재개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반지하에 있기 때문에 쉽게 안 보일 뿐입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과거에는 지학순 김재덕 주교(전주교구 5대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처럼 예언자적 소명을 가진 이들이 교회를 이끌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교회를 위한 교회, 쓸모없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사제와 신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제 서품 50주년#금경축#빈자의 친구#안광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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