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친해졌으니 절친인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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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에서 소문난 ‘도반’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

경북 경주시 기림사 동암 앞을 걷고 있는 지안 스님(왼쪽)과 호진 스님. 학승이자 수행자로 서로를 아끼며 걸어온 도반의 길이 아름답다. 경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경북 경주시 기림사 동암 앞을 걷고 있는 지안 스님(왼쪽)과 호진 스님. 학승이자 수행자로 서로를 아끼며 걸어온 도반의 길이 아름답다. 경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절친’은 무슨?” “아니다. 절에서 친해졌으면 절친 맞나. 허허.” “어쨌든 우리 사이가 삼국사기, 삼국유사랑 비슷하긴 해.” 불교계에서 함께 도(道)를 닦는 벗, 대표적 도반(道伴)으로 알려진 호진(74), 지안 스님(68)의 대화다. 사실 이들에게 누가 정사 삼국사기이고, 누가 야사 삼국유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난달 25일 호진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경북 경주시 기림사 동암(東庵)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1964년 법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호진 스님은 동국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국대 교수를 지냈다.

1970년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안 스님은 1974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뒤 통도사 강주와 승가대학원장을 거쳐 현재 조계종 고시위원장을 맡고 있다.》

○ 누가 변심했나


이들의 인연은 1981년으로 거슬러 간다. 이후 30년 넘게 공부하는 학승(學僧)이자 출가자로 인연을 쌓아왔다. 최근 개정판이 나온 ‘성지에서 쓴 편지’(불광출판사·사진)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08년 호진 스님이 인도 순례 중 지안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노년에는 같이 살며 함께 공부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같이 지내자고 했는데 누가 변심했을까. 호진 스님은 경주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통도사 반야암에서 한달음에 찾아온 도반을 보며 “변심은 무슨 변심이냐”면서도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가득했다.

“반야암이 화려하다며 마다했잖아요.”(지안 스님) “그렇기야 하지만 내가 눈치 보며 뒷방 생활하러 뭐 하러 갈까. 하하”(호진 스님) “따로 산다고 하다 동암 공사 잘못돼 그 생고생을 하고서….”(지안 스님)

‘성지…’와 둘러싼 화제도 이어졌다. 호진 스님은 당시 67세의 나이에 1600리(628km)에 해당하는 인도 성지를 도보로 순례했다.

“더울 때 섭씨 40, 50도에 이르는데 자전거나 3륜차를 탈 생각도 했죠. 그런데 자전거 타고 휘휘 가면 그게 뭐예요. 인간으로서의 붓다가 걸어가야 했던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느끼고 싶었어요.”(호진 스님)

“칠순 가까운데 도보예요. 근데 말린다고 어디 스님이 듣나요.”(지안 스님)

“내 나이 정도 되면 모든 여행은 마지막 아닌가요?”(호진 스님)

그 말끝에 지안 스님은 껄껄 웃으며 “스님은 유서 전문가”라며 웃었다. 외국에 가거나 먼 길을 떠날 때마다 삶의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유서를 쓰곤 하는 호진 스님의 버릇을 나무라는 얘기다.

○ 요즘 불교 어떤가?


호진 스님은 초기불교, 지안 스님은 대승불교 연구에 천착했지만 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불교에 맞닿아 있다.

호진 스님은 “우리 불교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됐다. 사람들의 가슴 영혼을 울리지 못하는 게 현재 불교의 문제”, 지안 스님은 “과거나 현재나 사람이 문제다. 정인(正人)이 사법(邪法)을 설하면 그 법이 정법(正法)이 되고, 사인(邪人)이 설하면 정법도 사법이 된다”고 했다.

이들의 대화는 자신들을 포함한 교단에 대한 자성으로 이어졌다.

“방장이나 주지 그게 무슨 욕심 낼 자리인가요. 과거에는 불교가 자장, 원효 등 국가대표급 인재들의 피를 끓게 했어요. 출가자들이 교단의 작은 권력을 좇아 다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중앙승가대) 총장 안 하겠다고 도망 다닐 때 알아봤어요. 웃음.”(지안 스님)

“그래도 나는 ‘노(No)’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나를 지킬 수 있었어요.”(호진 스님)

“알겠습니다. ‘노스님.’ 허허.”(지안 스님)

경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도반#호진#지안#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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