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진 가톨릭 혁명… 동성애-이혼 ‘판도라 상자’ 다시 닫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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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최종보고서에서 삭제
보수 반발에 3분의 2 동의 2표 부족… 찬성표가 반대표 2배 육박하고
주교회의 공개토론 자체가 큰 성과… BBC “교황의 문호확대 시도 퇴짜”

동성애와 이혼 등에 관대한 태도로 선회하려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시도가 보수파의 반대로 아슬아슬하게 무산됐다.

18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마무리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는 이날 최종 보고서에서 동성애자를 환대하고 이혼·재혼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던 중간보고서 문구를 모두 삭제했다. 이날 시노드에 참석한 180명의 주교들은 최종 보고서에 동성애, 이혼 등의 문구를 넣을 것인가를 묻는 투표에서 118명이 찬성, 6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주교회의 보고서 채택 요건은 참석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2표가 모자라 부결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에 앞서 주교 시노드는 13일 발표한 12쪽짜리 중간보고서에서 ‘동성애자에게도 가톨릭 신앙공동체를 위한 은사(恩賜·gifts)와 자질(qualities)이 있다’며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과 그 자녀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가톨릭계 보수파는 “교리를 저버린 역사상 최악의 보고서”라며 반발했다. 이에 교황청은 최종 투표를 앞두고 ‘동성애 성향이 있는 남녀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문구로 완화해 절충을 시도했으며 교회 교리상 결혼은 남녀만 할 수 있다고 못 박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동성애, 이혼 등과 관련한 문구는 최종 보고서에서 모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2주간의 시노드 동안 결론은 얻지 못했으며 교계 내의 진보와 보수세력 간의 깊은 분열만 확인시켰다”고 해석했다. BBC는 “동성애자와 이혼한 사람에게 더욱 자비로운 태도를 보이도록 설득하려던 교황의 시도가 ‘퇴짜’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시노드 마지막 날 회의에서 “이번 회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교회의 분열이 있던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상상한다”며 “하나 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교황의 임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우리는 1년 동안 가족들이 직면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과 도전들에 구체적 해결책을 찾고 여러 아이디어를 숙성할 시간이 있다. 시노드가 열렸던 이곳과 소그룹 등에서 논의된 모든 것을 정리한 보고서도 1년간 고민해 보자”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교황청은 시노드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각 교구에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내년 10월 시노드에서 성(性)과 가정 문제의 최종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미국의 가톨릭 전문지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는 “이번 시노드 최종 보고서에서 동성애자 문제 등이 제외됐지만 교회에서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된 것 자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리이며 그가 바랐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가톨릭 주교회의#동성애#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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