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은 食 아닌 藥… 몸과 마음 다스리는 수행食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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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 4일 11개국 참여 ‘세계사찰음식대향연’ 여는 봉녕사 주지 자연 스님

《 번잡한 거리를 잠시 벗어나니 주변 풍경이 금세 바뀐다. 입구를 지나자 사찰음식교육관 금비라에 이어 불(佛)자가 새겨진 불자바위, 묘엄 스님 시비, 대적광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각과 작은 연못, 수목이 빈틈없이 어우러진, 단정한 미인의 옷매무새다.
청담 스님(1902∼1971)의 딸로 우리 비구니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다 2011년 입적한 묘엄 스님의 체취가 가득한 봉녕사다. 40여 년 전 쓰러져가는 전각과 절집 살림공간인 요사채만 달랑 남아 있던 이곳은 묘엄 스님의 원력에 의해 승가대와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이 세워지는 등 비구니 교육의 산실이 됐다.
10월 3, 4일 경내에서 열리는 제6차 세계사찰음식대향연을 앞두고 24일 묘엄 스님의 제자로 그 뒤를 잇고 있는 주지 자연 스님(60)을 만났다. 》      
        

24일 경기 수원시 봉녕사 대적광전 앞 향나무 앞에서 만개한 자연 스님의 웃음꽃. 스님은 “과거에는 나이든 스님들이 뭐라 하면 ‘예’ 하고 답했는데 요즘에는 ‘스님, 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며 “원활하게 소통하면서도 치열한 수행의 전통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4일 경기 수원시 봉녕사 대적광전 앞 향나무 앞에서 만개한 자연 스님의 웃음꽃. 스님은 “과거에는 나이든 스님들이 뭐라 하면 ‘예’ 하고 답했는데 요즘에는 ‘스님, 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며 “원활하게 소통하면서도 치열한 수행의 전통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실 비구니 도량에서 외부인 출입이 많은 국제행사는 번잡한 일이다. 자연 스님은 “은사가 생전 ‘사찰음식은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며 그 기본이란 바로 자연과의 조화’라고 강조했다”며 “사찰음식대향연은 사찰음식에 담긴 자연과 생명의 정신을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분과 함께 나누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 11개국이 참여해 각국 발우공양과 고유한 사찰음식 등 닮은 듯 다른 사찰음식문화를 소개한다. 선재 적문 대안 우관 스님 등 사찰음식 대가들의 시연과 전시회도 마련돼 있다.

선재 대안 스님 등이 봉녕사 승가대 출신이다. 묘엄 스님이 생전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왜 음식을 잘하느냐”며 웃었다는 자연 스님의 전언이다.

불교에서 음식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찰음식을 식(食)이 아닌 약(藥)으로 여겨왔습니다. 요즘 먹는다는 식의 개념만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몸에 독이 쌓이고 병도 나게 됩니다. 사찰음식은 때 아닌 때에 먹지 않고, 필요한 때에 적절히 먹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식이기도 합니다.”(자연 스님)

은사의 유품을 모은 기념관과 대적광전 등 주변을 안내하던 스님은 40여 년 전 출가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어제 일 같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대학 국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4년의 일이다. 출가의 원력을 세우고 소개서를 품고 봉녕사를 찾았다. “그때 이곳은 사찰이 아니라 영락없이 폐사지라 실망이 컸어요. 소개서를 써준 분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당장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은사를 뵙고 절을 하는데 빙그레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확 잡히더군요. 호호.”

요즘도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에서는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봉녕사의 계율은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다. “출가 초기 사소한 일로 4박 5일 정학을 당해 공부 대신 벌로 공양간 소임과 울력을 한 기억도 있어요. 수행 환경과 자세는 과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수행자들이 너무 많은 생각과 분별을 갖고 있으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법이죠. 깨끗한 흰 천이 염색하기가 쉬운 것과 같은 이치죠.”

출가 초기 이런저런 법명을 쓰다 결국 자연(自然)이란 법명을 택한 스님은 “이름이 좋아 스님 생활도 잘해오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스님은 언제나 ‘다리 밑을 비추어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거창한 선의 이치를 논하기 전에 항상 자기 발밑을 살피는 수행자가 되어야죠. 그래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도 가능하고 남도 배려할 수 있죠.”

수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제6차 세계사찰음식대향연#자연 스님#봉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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