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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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4박 5일의 방한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울림은 진행형입니다.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내내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고,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왜 충격일까요? 그런 모습이 우리 종교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심지어 종교를 담당하는 기자들조차 한 해 몇 차례를 빼면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평신도와 비신앙인의 경우 TV 화면을 통해 고위 성직자들이 대통령과 식사를 하거나, 중요한 교계 행사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겠죠. 이런 현실에서 세계 가톨릭계 수장인 교황의 낮은 행보는 국내 종교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가톨릭을 포함한 종교계, 특히 고위 성직자들에게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교황을 향한 환호는 우리 종교인들이 보통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냉정히 말해, 그 환호도 가톨릭 자체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슈퍼스타의 개인기’를 향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도 교황청은 여기저기서 ‘물새는 방주’로 비유되고 있으니까요. 바티칸공의회 이후 계속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을 둘러싼 재정 스캔들, 일부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남성 위주의 폐쇄적인 성직자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 등 각종 현안에 직면한 것이 가톨릭의 현 주소입니다.

교황의 방한을 지켜본 종교인들은 스스로 종교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를 무엇보다 큰 아픔이자 그늘로 꼽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처럼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존경받을 만한 종교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난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70, 80년대에 비해 세상이 다양해졌다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그분들이 보여준 삶과 언행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여종들의 다툼에 “모두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는 황희 정승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은 황희처럼 큰 귀와 열린 마음 아닐까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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