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최강 캐스팅’ 홍광호-김준수만 봐도 배 부르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7월 16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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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는 일본에서만 3000만부 이상 팔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이다. 특히 라이토 역할을 맡은 홍광호(왼쪽)와 엘을 연기하는 김준수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사진제공|씨제스컬쳐
뮤지컬 ‘데스노트’는 일본에서만 3000만부 이상 팔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이다. 특히 라이토 역할을 맡은 홍광호(왼쪽)와 엘을 연기하는 김준수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사진제공|씨제스컬쳐
■ 뮤지컬 ‘데스노트’

일본서 인기몰이 중인 새 스타일의 뮤지컬
캐릭터 등 원작만화와 비교하는 재미 솔솔
홍광호·김준수의 불꽃튀는 이중창 인상적
앙상한 스토리 구조·밋밋한 음악은 아쉬워


일본에서만 시리즈 누계 30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걸작만화 ‘데스노트’. 우리말로는 ‘죽음의 공책’쯤 되겠는데, 여하튼 여기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만화책을 펼쳐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상식이 되어버렸다.

일본 뮤지컬을 손질해 들여온 데스노트는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상 최강의 흥행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법관을 꿈꾸는 천재 대학생이자 데스노트의 주인인 라이토는 영국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으로 월드배우가 된 홍광호, 라이토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엘은 국내 최고의 ‘완판배우’ 김준수가 맡았다. 여기에 정선아(미사), 박혜나(렘), 강홍석(류크)이 가세해 빈틈없는 흥행의 성을 완성했다.

뮤지컬 데스노트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데스노트가 지금까지 보아 온 작품들과는 살짝 다르다는 점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게 뭐지?”와 “뭔가 새로운 걸?”로 나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데스노트는 일본 공연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이다. 특히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공통된 특징은 ‘캐릭터들이 얼마나 원작과 닮아있는가’가 흥행의 요소, 작품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데스노트를 볼 때 원작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보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스타일의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관객들을 위해 일본판에 상당 부분 손을 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곳곳에 숨겨진 상징 … ‘홍·김’ 투 톱을 보는 재미

데스노트 곳곳에 감추어져 있는 종교적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데스노트는 정의, 죽음, 심판, 신 등 종교적 상징언어들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자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는 기존의 종교적 이분법을 대거 비틀어 놓았다. 데스노트를 쥐고 “내가 곧 정의”라 외치는 라이토의 성에는 ‘신’이라는 일본어인 ‘가미’가 들어가 있다. 게다가 ‘라이토’는 빛이라는 ‘라이트(Light)’의 일본식 발음이기도 하다. 물론 라이토의 ‘정의’는 극에서도 드러나듯 비틀리고 왜곡된 정의다.

김준수가 연기한 ‘엘’은 천사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엘의 옷은 눈부시도록 하얀 데다 날개처럼 펄럭인다. 구약시대 히브리어로 ‘엘’은 신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 등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이름에는 모두 ‘엘’이 포함되어 있다. 데스노트에서 천사(엘)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의의 빛(라이토)과 맞서 싸운다.

사신들인 류크와 렘도 선악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인간에게 냉소적인 류크는 검은 옷을, 미사를 위해 영원한 삶을 포기하는 렘은 흰 옷을 입고 있다. 악마적인 류크가 지독히도 좋아하는 사과는 선악과를 닮았다. 체포된 미사는 십자가처럼 생긴 형틀에 묶인다.

김준수와 홍광호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작품이다.

데스노트가 제공하는 ‘신적인 심판능력’에 중독 되어 가는 홍광호의 라이토도 좋았지만, 어딘지 천재 오타쿠스러운 김준수의 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이중창은 불꽃처럼 격돌하면서도 서로의 소리와 감성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김준수의 경우 평범한 넘버조차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불어넣는 재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배우들만으로도 배가 부른 작품. 재밌고 유쾌한 데다 조금은 머릿속에서 씹을 수 있는 뮤지컬이었다. 뭐, 원작을 압축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발생한 구조의 앙상한 뼈대, 조금은 밋밋하다 싶은 음악은 아무래도 아쉬웠지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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