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철철… 무대 위 완벽주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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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키드’서 모리블 학장 역 김영주

잡아먹을 듯 사나운 표정은 물론이고 짓궂게 씩 웃는 표정까지 자유자재로 짓는 김영주는 만화 속 캐릭터 같았다. ‘위키드’ 연출가인 리사 리구일로는 “김영주를 해외 공연에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잡아먹을 듯 사나운 표정은 물론이고 짓궂게 씩 웃는 표정까지 자유자재로 짓는 김영주는 만화 속 캐릭터 같았다. ‘위키드’ 연출가인 리사 리구일로는 “김영주를 해외 공연에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계에서 이 정도 기량을 갖춘 배우가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뮤지컬 ‘위키드’의 작곡가 스티븐 슈워츠는 모리블 학장 역을 맡은 김영주(40)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3월 한국을 방문한 슈워츠는 인상적인 배우로 그를 가장 먼저 꼽았다. 지난해 11월 22일 시작해 10월 5일 막을 내리는 10개월여 간의 대장정에서 김영주는 단독으로 모리블 학장 역을 맡아 무대를 꽉 채우고 있다.

4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그는 시원시원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모리블 학장 역은 이제 생활이 됐어요.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운 의상도 내 옷같이 편해요.”

카리스마 넘치는 모리블 학장 역의 김영주. 설앤컴퍼니 제공
카리스마 넘치는 모리블 학장 역의 김영주. 설앤컴퍼니 제공
모리블 학장은 초록마녀 엘파바를 보호하는 듯하지만 실은 마법사의 조종을 받아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왜곡시키는 데 앞장서는 악역이다. 그가 굵은 저음으로 “입은 쳐 닥치고”라며 글린다에게 쏘아붙이거나 글린다에게 군중을 선동하는 연설을 시킨 후 매의 눈으로 지켜볼 때면 싸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엘파바가 지닌 마법 능력을 확인하고는 “내 개인기가 뭔지 압니까. 남의 개인기를 밀어주는 개인기∼”라며 능청스럽게 씩 웃으면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빵빵 터진다.

이런 연기 뒤에는 집요한 노력이 있다. 그는 요즘도 매일 대본을 분석하고 연출가 리사 리구일로 앞에서 불렀던 노래를 녹음해 수시로 듣는다. “연습할 때 처절하게 붙잡았던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계속 다잡아야 박수 받을 때 부끄럽지 않거든요.”

1996년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공사 부인 역으로 데뷔해 18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그지만 10개월 넘게 홀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공연에서는 대사를 약간 다르게 말하는 실수를 처음 했다. 관객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펑펑 운 그는 대본이 찢어질 정도로 더욱 들이팠다.

“공부할수록 채울 부분이 자꾸 보여요. 감기에 잘 걸리고 위도 약한데 다행히 공연 기간 동안 아픈 적이 없었어요. 튼튼한 성대를 타고난 건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답니다.”(웃음)

172cm의 키에, 강한 마스크를 지닌 그는 뮤지컬을 시작할 초기에는 맡을 수 있는 역이 많지 않았다.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즐거워 무대에 올랐지만 작은 역할만 주어진 데 대해 지치기도 했다.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을 마친 후 열정이 사라진 것 같아 힘들 때 (뮤지컬 배우인) 진아라 선배가 말했어요. ‘불꽃을 들여다보면 빨간 불꽃만 있는 게 아니다. 파란 불꽃도 있다. 색깔에 관계없이 모두 다 태울 수 있다’고요.”

김영주는 다시 힘을 내 달렸다.

“어떤 역을 맡든 탁월하게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말 잘한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10월 5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6만∼14만 원. 1577-336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위키드#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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