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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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는 것일까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타인의 쓴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가슴을 두드려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비켜서 줄 수 있을까요? 떠나간 사람으로 인한 슬픔도 떠나보내고, 그냥 함께했던 시간에 감사할 수 있게 될까요?

 앨런 파슨스는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녹음해준 음향기사 출신의 음악가입니다. ‘Old and Wise(나이가 들고 현명해지면)’는 전주가 멋지죠. 또 영화 ‘비열한 거리’에 삽입되어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노래입니다.

 여러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50세 때보다 75세 때 이타주의, 유머 등의 성숙한 방어기제가 더 증가되고, 타인을 탓하는 투사나 수동적인 공격성 등의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감소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신건강도 좋아진다고 하죠. 물론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기적인 본능을 억제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인들을 위하고, 고통과 상처를 이 세상에 위로와 도움이 되는 것들로 승화시키거나 웃어넘길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현명한 어른인데, 그렇게 되기가 참 힘듭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경우 뇌가 저절로 그렇게 된다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물론 그만큼의 처절한 고통과 회한과 수긍이 필요한 것이겠죠?

 성숙하고 현명한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삶의 단계에서 요구되는 과제들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먼저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면 부모의 것이 아닌 자기만의 독립된 가치와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정체성). 내가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이 성숙의 기본 조건이니까요.

 그 다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어울려 살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친밀감).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기에,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먼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언행을 해야 하죠. 타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직업적인 안정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인의 기본 조건을 갖추면 대부분 자녀를 가지게 되거나 최소한 공동체의 주요 인물이 되고, 그래서 공동체나 우리의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생산성). 타인들의 공감을 끌어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 다음은 생산과 발전에서 조금은 뒤로 물러나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 문화, 윤리를 몸소 실행하며 본을 보여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의미의 수호자). 그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삶의 가치와 의미도 통합하게 되는 것이죠(통합).

 그냥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괄호 안의 발달 단계들을 성공적으로 성취해야 비로소 성숙해지고 현명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처와 분노입니다. 상처와 분노는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의 긍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희석되죠. 결국 혼자 현명해지려 노력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끼워놓으려 노력하는 것이, 현명해지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저도 그러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명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니까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앨런 파슨스#old and wise#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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