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괴짜’ 수프얀 스티븐스의 신명나는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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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7일 수요일 흐림. 패러디. #206 Sufjan Stevens ‘Death with Dignity’ (2015년)

22일 밤(현지 시간) 미국 코첼라 무대에 오른 수프얀 스티븐스(무대 위 오른쪽). 인디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2일 밤(현지 시간) 미국 코첼라 무대에 오른 수프얀 스티븐스(무대 위 오른쪽). 인디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전, 미국 주간지 ‘LA위클리’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참가하는 모든 음악 팀에 대한 기대치를 1등부터 꼴찌까지 매겨 기사로 공개한 거다. 천재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는 거기서 최하위권인 88위에 그쳤다. 그가 작년에 낸 앨범 ‘Carrie & Lowell’은 명작임에 틀림없지만 그 우울한 포크 음악이 코첼라의 분위기에 어울릴지는 모르겠다는 게 저평가의 이유였다.

스티븐스는 그걸 비웃듯 이번 22일 밤 코첼라에서 가장 독특한 공연을 보여줬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객석과 평단의 기대를 10t짜리 망치로 깨부쉈다. 경박한 야광의 오색으로 점철한 모자와 옷에 거대한 은색 날개를 양쪽 어깨에 단 그는 천사와 동네 꼬마 캐릭터를 기괴하게 콜라주한 팝아트 같았다. 지난해 친모의 별세를 애도하며 만든 끝도 없이 우울한 포크 곡들을 부른 이가 맞나. 그는 그 엄숙한 곡들을 슬로 잼(남녀상열지사를 주로 묘사한 느리고 끈적한 R&B),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재해석해 실소를 자아냈다. TV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라도 출연한 듯. 관객 일부는 신명을 즐겼지만 근작의 눈물 짜는 감성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연했다.

스티븐스가 괴짜란 걸 잠시 잊었다. 그는 한때 미국 50개주 프로젝트를 해 나가겠다고 했다. ‘Michigan’ ‘Illinois’ 같은 앨범에 그 주의 풍광이나 민속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녹여 넣었다. 그러다 돌연 전자음악을 도입한 괴상한 앨범 ‘The Age of Adz’(2010년)를 내놨다.

스티븐스는 이날 무대에서 케이팝 가수처럼 댄서들과 귀여운 안무의 춤을 추는가 하면 가슴팍에 미러볼을 박아 넣은 거대한 은박 의상을 입고 외계인처럼 노래하기도 했다.

그는 패륜아일까. 아니면 그 50분간의 희극은 친모의 별세에 대한 또 다른 애도의 방식일까. 슬픔이 넘친 자리에서 일어난 숭고한 웃음의 의식. 울다 못해 실성해 추는 병신춤…. 물론 그건 절절한 감정 대신 번쩍이는 자본의 성기를 게양한 주류 음악시장에 대한 고단한 패러디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곡에서 그는 R&B 가수 갤런트를 무대로 불러냈다. 야광 모자를 쓴 악동 같은 스티븐스가 기타로 ‘Purple Rain’의 도입부를 연주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슬프게 만들려던 게 아냐/아프게 하려던 것도/당신이 웃는 걸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야/자주색 빗속에서 당신이 웃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야.’

임희윤기자 imi@donga.com
#코첼라 밸리 뮤직#la위클리#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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