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5〉후지산의 상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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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후지산을 보면서 자랐다. 집에서도 보이고, 거리에서도 보이고, 학교에서도 보이는 게 그 산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후지산의 장엄한 모습은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너무나 당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산을 향해 투정까지 부리면서 그 넉넉한 품속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영글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그 산은 “끔찍한 일본제국주의와 조국을 침략한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너그럽고 장엄한 모습의 후지산이 이제는 “부정하고 거부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후지산과 관련된 감정의 분열과 상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유희’라는 소설로 1988년 제10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이양지였다. 그는 후지산을 뒤로하고 한국에 와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열심히 익히고 가야금과 토속 무용에 심취했다. 어떻게든 후지산으로 상징되는 일본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후지산을 부정하면 할수록 “마치 은혜 깊은 사람에 대해서 뒤에서 욕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묘한 가책”을 느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후지산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야 깨달았다. 혼란스러웠다. ‘유희’를 비롯한 소설들은 그 혼란스러운 감정의 고백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자기 속에 배어 있는 일본”을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후지산이 보이는 마을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어느 날, 이양지는 자기가 살던 마을을 찾았다. 후지산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는 평온한 마음으로 후지산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분열적이고 양가적인 감정과 화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처의 치유책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긍정의 정신에 있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후지산#소설 유희#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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