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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자유와 정의는 과학과 함께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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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자유와 정의는 과학과 함께 성장했다”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6-09 03:00수정 2018-06-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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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궤적/마이클 셔머 지음·김명주 옮김/768쪽·4만8000원·바다출판사
안네킨 헨드릭스라는 여성이 1571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종교 재판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기 직전 모습을 그린 화가 요하네스 얀 루켄의 그림. 중세 유럽에서 마녀 재판을 당해 살해된 사람이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바다출판사 제공
피고인을 묶어 물에 빠뜨린다. 그가 물에 가라앉으면 죄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물 위로 떠오르면 ‘물의 순수한 원소들이 악을 밀어내는 것’이기에 마녀가 틀림없다. 화형에 처해야 마땅하다. ‘익사 아니면 화형’으로 끝나는 중세 마녀재판 얘기다.

이 책은 부제처럼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를 조명했다. 중세에는 흉년이나 전염병, 자연재해와 같은 불행이 생기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마법과 미신이 성행했다. 그러나 점차 이성과 과학이 그를 대체했다. “천문학이 점성술을 대체했고, 화학이 연금술을 이어받았다. 확률 이론이 운과 운명을 밀어냈고, 보험이 불안을 누그러뜨렸다. …도시 계획은 화재 위험을 줄였고, 사회적 위생과 세균 설은 질병을 몰아냈다. 이로써 예측 불가능한 인생은 한층 선명해졌다.”

노예제 역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부도덕함을 주장한 뒤 서서히 폐지됐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갖춘, 완전한 권리를 지닌 인격체로 볼 이성적 근거를 마련한 것도 출발은 과학이었다.

책은 오늘날 동성애자의 권리 이슈도 과학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진보해 왔으며 진보할 것이라고 본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한 뒤 동성애 혐오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8주 된 배아는 신경세포들 사이에 시냅스 연결이 생기지 않아 생각이나 감정과 엇비슷한 것조차 불가능하다” 등의 연구는 여성의 낙태 권리를 지지한다.

특히 동물의 인지능력과 감정에 대한 연구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도록 이끌었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1789년 “중요한 건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라며 도덕의 시선을 동물에게까지 확대했다. 저자 역시 인간은 물론 동물까지 포함한 ‘감응(感應)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 도덕의 근본 원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응적 존재의 착취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대형 유인원과 해양 포유류까지 도덕의 영향권을 확장해야 한다.”

무신론자인 저자는 사이비 과학을 비판하는 잡지 ‘스켑틱’의 발행인 겸 편집장이다. 말하자면 강연과 저술로 창조과학이나 ‘잃어버린 초 고대 문명론’ 등과 싸움을 하는 게 업(業)이니 이런 논리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너무 ‘과학만능주의’에 기울어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약자의 권리 신장은 당사자들의 운동(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저자 역시 “이성만 있으면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한다. 더구나 우생학이 나치즘을 뒷받침했던 역사를 보라. 엇나간 과학이 도덕의 궤적을 정의와 진리, 자유의 반대 방향으로 이끈 사례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전쟁을 끝내고 살인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일본인과 미국인 양쪽에서 족히 수백만 명에 이를 목숨을 구했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원자폭탄 투하는 당시 취할 수 있는 조치들 가운데 가장 덜 파괴적인 것이었다. …그나마 덜 부도덕한 행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당시 현장에 있던 무고한 한국인을 포함해 원폭에 희생된 일반 시민과 후손들은 과연 이 시각에 동의할까. 더구나 핵폭탄 투하는 무기 실험에 가까웠고, 불필요했다는 견해도 많다. 과학적 사고 역시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이데올로기의 영향 속에 존재하고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저자 스스로가 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도덕의 궤적#마이클 셔머#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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