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위험이 닥치면 논리보다 두려움을 믿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서늘한 신호/개빈 드 베커 지음·하현길 옮김/456쪽·1만8000원·청림출판

범죄 발생 전 나타나는 위험 신호,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
두려움-불안-의심 등 느껴지면 무시하지 말고 주의 기울여야

운전하는 사람은 어떤 차가 갑자기 끼어들 기미를 보이는지 간파하고, 어떤 차를 추월해도 괜찮을지 기민하게 결정한다. 직관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신호를 바탕으로 내리는 판단이다. 이런 관찰력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위험한 상황, 위해한 인물을 가려낼 수 있다.

미국의 폭력·범죄 예측전문가로, 미국을 찾은 각국 대통령, 왕, 총리 등의 경호를 담당했던 저자는 대부분의 범죄는 발생 전 일종의 시그널이 있다고 말한다.

켈리의 사례를 보자. 짐을 가득 들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켈리는 떨어진 통조림 캔을 주워주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그녀가 사양하는데도 굳이 현관 앞까지 따라와 짐을 거실에 내려주겠다고 말한다. 켈리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남자의 거듭된 호의를 사양하는 게 무례해 보일까 봐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다. 결과는 끔찍했다. 집에 들어온 남자는 켈리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위협한 뒤 성폭행했다.

여기엔 이미 여러 신호가 있었다. 범죄자들은 청하지 않은 호의를 베풀거나 “우리”란 말을 쓰면서 무의식중에 ‘한 팀’을 강요한다. 상대의 거절을 어렵게 만들려는 수법이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상세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거짓말임을 숨길 수 있고 상대가 ‘낯선 사람’이란 점, 주차장이나 인적 드문 골목이란 점 등 중요한 맥락을 놓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신호 중 하나는 ‘아니요’라는 말을 무시하는 것이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실행하기 전 일종의 ‘면접’을 본다. 재차 권한다고 거절 의사를 포기하거나 협상하는 것은 상대의 지배력에 굴복했다는 의미다. 범죄자들은 그렇게 ‘만만한 약탈자’를 찾아 헤맨다. 저자는 ‘아니요’는 그 자체로 완전한 문장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타협의 여지가 없어야 범죄의 표적이 되는 싹을 잘라 버릴 수 있다.

스토킹이나 직장 내 범죄 등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병적인 집착을 보이거나 분노, 협박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불분명하게 말하거나 돌려 거절하는 방법은 전혀 효과를 볼 수 없다. 최선의 대응은 명료하게 거절하고 접촉이나 회신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많은 범죄들이 관계를 끊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거절에 서툰 여성들의 약점을 파고든다는 점은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이런 신호를 모두 민감하게 지각할 순 없다 해도 우리에게는 직관의 힘이 있다. 저자는 최상위 직관의 신호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이 불안, 의심, 망설임, 의혹, 예감, 호기심 등이다. 즉각적 위험에 처하면 직관은 논리적 사고 대신 두려움의 신호만 강하게 보낸다. 무시하기보다 마땅한 이유가 있어 경보가 울린 것이라고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안전하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위험신호를 간파할 능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단지 상황, 관계, 시선 때문에 대충 넘겨서 문제가 커질 뿐이라는 것.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스스로의 직관을 좀 더 신뢰하고 당당하게 거절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늘한 신호#개빈 드 베커#하현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