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공주까지 더듬더듬… 한림원 뒤흔드는 ‘몹쓸 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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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8명 성폭력 한림원 사진작가
왕위 계승 1순위 공주 2006년 추행… 왕실은 별도 언급 없이 “미투 지지”
미온 대응에 선정 위원들 집단사퇴… 올 노벨문학상 戰後 첫 취소 가능성
내년 2명 발표 여부 등 3일 결정


“올해 노벨 문학상 시상을 하지 않고 내년 10월에 두 명을 발표할 수도 있다.”

‘이 시대 지성의 상징’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페르 베스트베리 위원은 4월 27일 “5월 3일 회의에서 올해 수상자를 정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한림원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3년 이후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1786년 구스타브 3세에 의해 설립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위기는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여성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세계적으로 휩쓸던 때, 한 스웨덴 언론이 여성 18명이 프랑스계 사진작가인 장클로드 아르노에게 1996년부터 2017년까지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아르노는 한림원 위원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으로 한림원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한림원이 소유하고 있는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 아파트 등에서 여성들을 잇달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

지난달 27일에는 스웨덴 언론 ‘스베스타 다그다블라데트’가 아르노가 2006년 빅토리아 스웨덴 공주까지 성추행했다는 충격적인 사건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2006년 12월 스톡홀름 한림원 소유의 빌라 건물에서 열린 연회에서 작가 에바 비트브라트스트룀은 아르노가 빅토리아 공주의 하반신을 더듬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비트브라트스트룀은 한림원 호라세 엥달 위원의 부인이었다.

그는 “아르노가 슬쩍 다가와 공주의 목에서부터 등과 그 밑까지 쓰다듬는 것을 봤다”며 “그녀의 여성 수행원이 급하게 앞으로 나가 그를 밀쳤다. 엥달도 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날 사건 이후 엥달은 왕실로부터 당시 29세였던 빅토리아 공주를 절대 아르노 옆에 홀로 남겨두지 말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빅토리아 공주는 현 국왕인 칼 구스타브 16세의 장녀로 차기 왕위 계승 서열 1위다.

스웨덴 왕실은 보도 이후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르노는 “악의적인 소문”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설상가상으로 한림원은 심각한 내부 갈등에 휩싸여 있다.

성추행 폭로 이후 한림원이 조사를 위탁한 로펌은 4월 초 아르노가 성추행뿐 아니라 2016년 수상자인 미국 팝가수 밥 딜런을 비롯해 최소한 7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명단을 사전에 유출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게다가 아르노가 한림원이 소유한 파리 아파트에 자신의 이름을 문패로 부착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아르노가 부인 프로스텐손과 함께 부당하게 한림원 회계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럼에도 프로스텐손에 대한 아무런 징계 조치가 없자 4월 초 한림원 위원 3명이 반발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일주일 후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도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스웨덴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상자 명단 유출 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두고 도박이 벌어지는 만큼 아르노의 사전 유출이 이와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차질이 생긴 건 잇따른 위원 사퇴 때문이다. 위원 정원 18명 중 6명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다른 이유로 이미 두 명도 활동을 중단한 상태여서 현재 활동 중인 위원은 10명뿐이다. 규정상 위원은 종신직이어서 사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은 관련 규정을 바꿔 새로운 위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노벨 문학상#한림원#미투#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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