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구운 책]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4월 29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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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을 살해했습니다…나는 살해를 잘못 발음해서 사랑을 말하는 실어증 환자처럼, 매일매일 나를 살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소설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멘토프레스)’은 상당히 충격적인 서두로 시작됩니다. 폭력과 가난을 이겨낸 한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부부입니다.

첫 번째 화자인 조영애 여사는 근현대사의 큰 변곡점을 몸 하나로 버티고, 부대끼며 산 여성입니다. 가난과 남편의 폭력, 권위 앞에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합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그녀는 철없이 굴던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부끄러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그녀는 아이에게 빨강모자를 씌워주었습니다. 그것이 아이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또 다른 화자는 남편입니다. 군화와 산업화로 상징되던 시기. 그는 남자들의 시대를 거칠게 살았습니다. 변변치 않은 수입이지만 늘 친구와 술이 있었습니다. 가족은 뒷전이었죠. ‘여자와 북어는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내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일러 공장에 취직한 남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3년’을 보냅니다. 그리고 쓰러집니다. 남자는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인 역시 쓰러집니다. 남자는 후회합니다.

소설 곳곳에 은유와 암시를 상징하는 언어들이 가득 뿌려져 있습니다. 소설 속 ‘빨강모자’는 주인공이 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봉인된 기억의 상징입니다. 상처와 죄의식, 구원을 상징하면서 마지막까지 소설 전체를 이끄는 알레고리로 작용합니다.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은 폭력과 가난에 노출된 한 가족이 어떻게 이를 딛고 회생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문학의 힘을 빌려 진정한 사랑과 용서, 구원이 무엇인지를 제시합니다.

작가 김은상도 어쩌면 빨강모자를 쓴 아이였는지 모릅니다. 책날개에 작가는 자신의 고단하기 짝이 없었던 인생을, 마치 이력서를 쓰듯 덤덤하게 나열해 놓았습니다. 그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 하는 동안 어머니는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일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 고통들의 일부가 글로 작성됐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실천했던 것은 참혹했던 한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참혹의 최소화를 통해 폭력의 개연성을 지닐 수 있었는데, 이것이 초기 기획했던 에세이에서 휴먼다큐 소설로 전환한 가장 큰 이유였다. 삶의 잔혹에 대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겨우 문학일 수 있겠다는 푸념도 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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