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엔 어른-아이 꿈 모두 담겨… 평생 보는 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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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의 노벨상 ‘라가치상’
올해 동시 수상한 한국작가 3인

올해 라가치상을 수상한 개성 넘치는 그림책을 각각 손에 든 안효림, 정진호, 배유정 작가(왼쪽부터). 이들은 “어른에게도 그림책은 삭막한 현실에 쉼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올해 라가치상을 수상한 개성 넘치는 그림책을 각각 손에 든 안효림, 정진호, 배유정 작가(왼쪽부터). 이들은 “어른에게도 그림책은 삭막한 현실에 쉼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린이 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 올해 수상자 명단에 한국작가 3인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이탈리아에서 매년 3월 말에 열리는 어린이책 도서전인 볼로냐 도서전에서 시상된다. 혁신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뉴호라이즌 부문에 ‘나무, 춤춘다’의 배유정 씨(38), 첫 책을 낸 작가에게 주는 오페라프리마 부문에서 ‘너는, 누굴까’를 쓴 안효림 씨(40), 아키텍처 앤드 디자인 부문에서 ‘벽’의 정진호 씨(31)가 주인공이다. 정 작가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한국 그림책은 판권 수출이 늘고 해외 수상 소식도 잦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라가치상 수상자들이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 모여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그림책은 아동서적이 아니다!

배 씨는 2016년 출간한 ‘나무…’로 수상했다는 소식에 눈물부터 쏟았다고 했다. 이 책은 아래로 펼쳐서 봐야 하는데 길이가 15m에 달한다. 나무, 꽃, 물고기 등이 유려한 색감으로 흘러내려 예술 작품 같다. 반달 출판사에서는 적자를 볼 각오로 만들었는데 정작 서점에서는 어디에 진열해야 할지 난감해했다고 한다. 아동서도 예술서도 아닌 것 같다는 이유였다. 회의감에 빠진 그에게 수상은 큰 힘이 됐다. 다른 작가들도 공감했다.

“작가의 자신감은 판매부수와 직결되거든요.(웃음) 책이 잘 안 팔리면 내가 잘하는 게 맞나 의기소침해지기 쉬운데 상을 받으니 격려와 확인을 받은 느낌이죠.”(정 씨)

책에 맞는 서가를 찾지 못해 좌절한 배 씨의 경험은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책은 아동문학 하위 장르로 편입되고, 아동문학 내에서도 글을 읽기 전 유아가 보는 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들만 읽는 책과 아이들도 보는 책은 다르다”고 말한다. 안 씨는 “5세든, 할머니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그림책”이라며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로서 위상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 한 번 사면 평생 보는 책

그림책은 때때로 글도, 번역도 필요 없다. 무대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등을 해 온 배 씨, 아동문학을 공부하다 그림책 작가가 된 안 씨, 건축을 전공하고 ‘그림책으로 건축 중’인 정 씨 모두 그림책의 매력으로 “그림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의미를 찾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즐기면서 본 뒤 자신만의 메시지를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 정 씨는 “그림책은 한 번 사두면 10년, 20년을 더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권에 10만 원에 달하는 일본 작가의 그림책을 애장품 1호로 꼽았다.

최근 그림책 전문서점이 늘고 관련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되는 등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역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그림책 100배 즐기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다. 정 씨는 “그림책은 스스로 해석할 기회가 많으니 제목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탐색을 해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부모님’ ‘구름’이라는 주제를 던지면 그에 맞춰 골라올 수 있는 그림책이 무궁무진하단다. 안 씨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힐 때도 일단 부모 자신과 가장 소통이 잘된 책을 골라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모두들 바쁘고 여유가 없지만 그림책을 볼 때만이라도 시간을 갖고 편견을 버리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전환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배 씨)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라가치상#아동서적#그림책#어린이책#한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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