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가장 큰 적은 침묵… ‘잘못됐다’ 소리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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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까지 서울-평창서 ‘국제인문포럼’… 팔레스타인 흐룹-한국 장강명 만남

분쟁·분단지역 작가로서의 공통점으로 금방 공감대를 형성한 칼리드 흐룹 씨(왼쪽)와 장강명 씨. 두 사람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선 침묵에 대항하는 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공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분쟁·분단지역 작가로서의 공통점으로 금방 공감대를 형성한 칼리드 흐룹 씨(왼쪽)와 장강명 씨. 두 사람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선 침묵에 대항하는 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공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시대와 언어,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도모하는 올림픽 정신은 어떤 면에서 문학과 닮은 점이 많다. 19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국제인문포럼’에 참석한 팔레스타인 작가 칼리드 흐룹 씨(49)와 한국 소설가 장강명 씨(43)를 만났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20여 나라 작가들이 모인 이번 포럼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로 ‘세계의 젊은 작가들, 평창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란 주제 아래 19∼22일 서울과 강원 평창에서 열린다. 》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흐룹 씨는 가자지구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글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로 불린다. 장 작가는 ‘표백’(2011년) ‘댓글부대’(2015년) ‘우리의 소원은 전쟁’(2016년) 등 한국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두 작가가 분쟁·분단지역에서 작가와 문학의 역할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나눴다.

―평창 올림픽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30년 만에 두 번째로 치르는 올림픽이다. 이를 계기로 한 포럼에 참석한 소감은….

▽흐룹=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세계 평화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지역이 됐다. 평화적 올림픽을 기념해 세계 작가들이 모인 건 역사적 의의가 깊다. 작가들이야말로 평화와 꿈,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남북한 단일팀 합의도 평화로 가는 상징적인 길 같다.

▽장=현재 한국의 상황은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고 무척 복잡하다. 정치, 사회적 갈등에서 작가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던 차에 세계의 작가들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 반갑다.

―분쟁과 분단이란 고통을 일상으로 안고 살아가는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작가로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아픔은 무엇인가.

▽흐룹=한국에 도착해 다녀보고 놀랐다. 분단국가인데 무척 평화로웠다. 누구도 어디 가느냐고 검문도 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다르다. 가자지구는 군사적으로 봉쇄돼 있고 검문이 일상이다. 가자지구에서 불과 1시간 반 거리인 예루살렘에 가는 게 한국까지 오는 것보다 더 걸린다. 분쟁의 아픔이 매일의 문제다.

▽장=가자지구의 현실엔 뚜렷이 저항할 대상이 있는 것 같다. 한국도 일제강점기에는 저항문학이 있었고 이후엔 독재가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분명하다. 곧 발표할 차기작이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에 관한 논픽션이다. 식량난으로 최대 33만 명이 넘게 굶어죽은 사건이지만 제대로 된 기록이 거의 없었다. 그런 비극에도 놀랍도록 무심했다. 북한 역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지만 멀고 감춰진 국가다. 분단이 일상화되며 무감각해지는 측면이 있다.

▽흐룹=
작가가 다룰 주제에 분쟁만 있진 않겠지만 내겐 우선순위가 있다. ‘지구상 가장 큰 야외수용소’인 가자지구에선 지금도 누군가가 죽는다. 피란민 캠프를 향한 습격에 다리를 잃은 뒤 휠체어에서 저항하던 청년은 얼마 전 결국 목숨을 잃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글을 쓰겠지만 공정한 접근이 중요하다. 단지 내 나라나 나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쓴다.

―평화로 향하는 길을 방해하는 진짜 적은 무엇일까.

▽흐룹=가장 위험한 건 침묵이다. 많은 사람들이 24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사소한 것에 묶여 정말로 중요한 걸 보지 못하고 있다. 침묵은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다. 작가라면 적어도 소리라도 쳐야 한다. “이건 잘못됐다!”라고.

▽장=지금 한국은 거대하고 흐릿한 적이 더 문제다. 제도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뤘고, 분단 상태이긴 하지만 공습이나 전쟁 대결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흐릿하고 혼미한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작가로서 무력감, 죄책감을 느끼기 쉽다. 비인간적인 사회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작가일수록 더 공부해야 하고 성실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평화를 위한 작가와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흐룹=작가가 느끼는 무력감, 상실감에 공감한다. 우리가 과연 어떤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저 작은 물방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들 쓴다면, 달라질 수 있다. 미약하더라도 내 몫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작가는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열망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정치가 할 수 없는 한계 너머의 꿈에 대해 말해야 한다.

▽장=침묵에 대항하는 전쟁이 필요하단 지적이 감동적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작가가 전해주는 생생한 현실과 태도에서 용기를 얻는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모두 다르다고 했는데 한국대로의 한국적 상황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고민으로 묵묵히 써나가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국제인문포럼#팔레스타인 흐룹#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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