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경제적 불평등 벽 허문 역사적 사건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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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역사/발터 샤이델 지음·조미현 옮김/768쪽·4만 원·에코리브르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네 명의 기사는 세상이 종말할 때 등장하는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를 빌려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전염병을 평준화의 네 기사로 개념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설명한다. 에코리브르 제공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네 명의 기사는 세상이 종말할 때 등장하는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를 빌려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전염병을 평준화의 네 기사로 개념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설명한다. 에코리브르 제공
억만장자가 몇 명 있어야 세계 인구 절반의 순자산과 맞먹을까. 2015년 기준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의 자산과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 명의 개인 자산의 합은 비슷했다. 경제 불균형은 국가 내부에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최상위 1% 가구의 소득이 전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8%로 3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하위 90% 소득 비중은 49.7%로 역대 최저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역사학자이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저자는 석기시대부터 21세기까지 인류사에 나타난 방대한 경제사를 조명하며 역사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에 주목한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종말 이야기를 다룬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를 본떠 역사상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킨 요인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고 ‘평준화의 네 기사’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평준화의 네 기사’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저자가 꼽은 평준화의 네 기사는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전염병이다. 저자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불평등의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며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 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역사상 최대의 평등화 동력’으로 꼽는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이다. 1850년 문호개방 이후 불평등이 심화된 일본은 1938년 상위 1%의 부자가 총 신고소득의 19.9%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들의 점유율은 7년 만에 6.4%로 떨어졌다. 손실 절반 이상은 최상위층 부자 가운데서도 가장 부유한 0.1%에서 나타났다. 남성 인구의 25%가 동원된 2차 대전 도발이 그 원인이었다. 저자는 “전시의 정부 규제, 인플레이션 및 물리적 파괴는 소득과 부의 분배를 고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1차 대전 이후 혁명으로 가장 극적인 불평등 감소가 뒤따른 곳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였다. 혁명 지도자들이 부농들의 토지재산권 국유화와 은행 재산 압수 조치 등을 벌인 결과 제정 러시아 말엽 0.362이던 지니계수가 1967년 0.229로 완화되며 불평등 간격이 좁혀졌다.

저자는 국가 실패로 인한 불평등 완화 사례로 소말리아를 꼽는다.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뒤 기존에 편파적인 혜택을 전유하던 일부 파워 엘리트 집단이 무너졌고, 1997년 0.4였던 소말리아 지니계수는 이웃 국가와 서아프리카보다 낮아졌다. 흑사병과 페스트 등 각종 대형 전염병도 불평등의 완화를 가져왔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되면서 반대급부로 노동가치 상승, 임금 상승 효과가 동반돼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는 효과가 뒤따랐다.

저자가 꼽은 ‘평준화의 네 기사’는 ‘폭력적인 재난’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저자는 평준화의 규모 역시 폭력의 규모에 따라 달라졌다고 본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안에는 다양한 연구자료, 역사적 기록 등이 녹아 있어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다만,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안 제시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불평등의 역사#발터 샤이델#조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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