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알콩달콩 신비한 집단…최인호 선생의 ‘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6일 0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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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선생은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35년 동안 잡지에 연재했다.  동아일보DB
최인호 선생은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35년 동안 잡지에 연재했다. 동아일보DB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서부터,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심원에서부터, 창세기 이전에서부터 준비되어 왔던 영혼의 방. 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가정의 방에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았던 나의 아내여. 그리고 나를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순한 가족,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리고 또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최인호 ‘가족’ 중에서

최인호 선생(1945~2013)의 많은 연재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 지면에 연재한 작품은 ‘가족’이다. 1975년부터 35년 동안 잡지 ‘샘터’에 쓴 가족 이야기다. 샘터에 근무하던 문우들이 매달 콩트식 연작소설을 한 편씩 싣자고 제안했고, 그는 가족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 네 살이었던 딸 다혜, 두 살 아들 도단이는 연재 기간동안 성장했고 결혼해 저마다의 가족을 이뤘다. 작가는 사위와 며느리를 맞았고 손녀를 봤다. 어머니가, 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오랜 기간 작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정하게 들려주었다.

가족은 신비한 집단이다. 아침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퉜다가도 저녁에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려 있다. 부모-자식이라는 선택불가능의 관계, 어찌할 수 없이 매일을 함께 하는 관계라는 건 엄청난 인연이다. 그 가족의 일상, 서로 부대끼는 순간순간이 최 선생의 다감한 글에 담겼다.

생전의 최 선생이 그렇게 다감했다. 얼마 만나지 않았는데도 오래 본 듯 말을 건네고 정을 보였다. 그 따스함이 가족의 힘이었으리라. 긴 추석 연휴, 우리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가족과 정을 나누고 북돋울 시간이다. 최인호 선생이 글에서 인용한 김수영의 시 ‘나의 가족’의 마지막 두 연.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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