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탄핵은 악습 끊을 계기… 산업화 시절의 옛 시스템 벗어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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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前부총리 대담집 출간 간담회

“탄핵 정국의 혼란은 한국 사회가 변화를 시도할 좋은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례 경제 수장을 지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3)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근 출간한 대담집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 전 부총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제 신용평가사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직접 연락을 취하며 동분서주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이헌재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2005년 청와대 내 386세대 참모진과 갈등을 빚으며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회고록 집필과 강연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전 부총리는 지금의 탄핵 정국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없앨 절호의 기회”라고 봤다. 조기 대선 정국 등으로 나라 안팎 여건이 혼란스럽지만 이것이 오히려 지난 정권의 잘못된 정책들을 일찌감치 중단시키는 역설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는 “한국의 현 정치·경제 체제가 산업화를 추진하던 시절의 옛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 발전을 시작한 1960년대에 처음 시작된 국가 주도의 정책들이 5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큰 틀에서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동안은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박정희 시대의 대통령이 된 줄 알고 행동해 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대통령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제 분야에서도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더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이제는 국가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그려야 할 미래 사회의 비전으로 이 전 부총리는 “리바운드 사회”라는 신조어를 제시했다.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다시 잡아내는 농구의 리바운드처럼, 사람들이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꿈을 좇을 수 있도록 안전망을 갖추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책으로 이 전 부총리는 “개인의 실패 비용을 국가가 나눠 부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근로장려금(EITC) 등을 통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을 국가가 뒷받침해 주는 대안을 고려해 보자”고도 했다. 차기 대선에서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선 “앞으로 3, 4년은 지금처럼 5개 이상의 힘 있는 정당과 10여 개의 정파가 난립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며 “불가피한 개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담대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해 8월 교수,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과 함께 싱크탱크인 ‘여시재(與時齋)’를 꾸려 정책 제언에 힘쓰고 있다.

세종=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이헌재#탄핵#대담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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