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사람들은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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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2015) 》
 
 올해 세 번째 대입 수능을 치른 K에게서 얼마 전 연락을 받았다. 입시학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담당하던 학생이다. 주말마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불수능’(난도가 낮아 변별력이 없는 ‘물수능’의 반대말로 어려운 수능을 의미) 탓에 성적은 더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말 한 마리만 있으면 대학가는 ‘헬조선’인데 유독 나한테만 엄격히 구는 것 같다”라며 “차라리 한국을 뜨고 싶다”라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행복해질 거란 희망이 없다며 한국을 떠난다. 그녀는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월급은 늘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남자 친구는 취업 준비생이라 수억 원씩 드는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결혼한다 해도 아등바등 살아갈 생각을 하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이런 한국에서 살다간 결국 자신의 할머니처럼 지하철에서 폐지를 줍게 될 거라는 확신만 커져 갔다.

 책을 읽어 가다 계나가 “조국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내가 조국을 사랑해야 하느냐”라고 물을 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계나처럼 최근 젊은 세대는 ‘한국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여전히 한국에선 돈과 든든한 배경만 있으면 대학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말 한 마리만 있었으면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K의 얘기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계나처럼 절망했지만 그녀와 달리 한국을 지키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의 부활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진짜 싫어하면 혼내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광장에 모인 국민이 모두 계나처럼 한국을 떠날 결심을 굳히기 전에 대한민국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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