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의 독서일기]평생 단 한번도 미치지 않은 인생은 얼마나 따분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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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작가 올리버 부르도의 ‘미스터 보쟁글스’

 첫 줄을 읽고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는 두 가지다. 너무 지루해서 마지막까지 가볼 생각이 나지 않은 경우와 심장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슬쩍 소개해주고 싶은 책은 분명 그 작가의 것이었지만 독자인 내 것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감정은 소유보다 공감이란 말이 적절할 것이다. 한 권의 책에도 저자가 아닌 책 스스로의 인격이 있다. 책의 겉과 속이 다른 이유다. 곁에 두고 싶은 책은 좋은 인기척을 늘 지니고 있다.

 어떤 책은 첫 문장만 읽었을 뿐인데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친화력이 있다. 이 책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 작살로 파리를 잡는 일이었단다. 그때 쓴 작살이랑 짜부라진 파리를 보여주셨다.’

 프랑스의 무명작가였던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소설은 내가 겪은 실화로 겉과 속이 모두 거짓말로 되어 있다. 인생이 흔히 그렇듯이.’ 소설이 거짓말로서 지니는 문학적 가치는 그것이 거짓말이기 때문에 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있다. “그 녀석은 날 닮아서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선 세상을 너무 사랑하려고 했던 아버지 이야기가 꼭 나와야 하는 것처럼.

 200쪽이 조금 안 되는 이 소설은 엉뚱하고 광기에 가득 찬 가족들이 삶의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겉과 속이 뒤집힌 세상에서는 이해받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깥에선 거짓으로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닌 사람들의 인기척에 있다. 외로워지기 싫어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가족이 되어간 우리들의 세계에선 의미심장하다. 좋은 소설이 스스로의 겉과 속을 드나들 듯이, 인간의 삶과 지난한 슬픔과 어이없게 터져 나오는 웃음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우리의 겉과 속을 넘나들 듯이.

 주인공들은 빌 로빈스의 음악 ‘미스터 보쟁글스’를 들으며 매일 밤 파티를 열고 춤을 춘다. “어떤 사람들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미치지 않는다. 얼마나 따분한 인생일까”라고 말하며.

 정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있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유쾌하고 명랑한 진실들로 독자를 이끈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흰개미 박멸회사 대표를 지낸 저자의 독설과 위트는 세상에 숨겨놓았던 화법처럼 신선하다. 이 작가가 고안해낸 거짓말의 매력에 빠져볼 만하다.
 
김경주 시인·극작가
#미스터 보쟁글스#올리버 부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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