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16세 동호의 희생… 광주가 공수부대 행진에 반발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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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소년이 온다(한강·창비·2014년) 》
 


아이돌그룹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 댓글에 최근 많이 등장하는 말이 “꽃길만 걷자”다. 그냥 길, 혹은 아스팔트길도 아니고 꽃길이라 하는 걸 보니 좋은 뜻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래를 찾아보니 2월 한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그룹 멤버가 1위에 오른 다음 “엄마, 오빠, 우리 셋이서 바닥부터 힘들게 살아왔는데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라는 눈물의 소감을 발표해서 알려졌다는 설이 유력했다.

요지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성공하거나, 안락하거나, 건강한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천변을 걸어가던 엄마에게 꽃 핀 쪽으로 걸어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곱 살 동호다. 두 형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심심해하는 어린 동호를 데리고 남편의 가게로 가던 길을 추억하는 동호 어머니의 독백은 절절하다 못해 가슴을 치게 만든다. 그늘이 싫어 햇빛 비추는 길로 가자던 동호가 목격한 군대의 참혹한 강경 진압은 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16세의 동호는 시신을 안치한 상무관에서 일손을 돕다 계엄군에게 희생된다. 동호의 둘째 형이 상무관 앞에서 빈손으로 돌아선 것을 두고 큰형은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고 있었다면서 (동호를) 왜 안 데려 왔냐”라고 따진다.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라며 울부짖는 둘째 형의 외침은 마치 당시 광주에 없었던 사람을 꾸짖는 것만 같다.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11공수여단이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광주시내를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기획했다가 5·18 관련 단체의 반발로 취소했다. 11공수여단이 시내를 행진하는 데 대해 광주 사람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소년이 온다’를 권한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말하는 동호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책#소년이 온다#한강#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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