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부심으로 쓴 ‘다른 중국’ 진흙탕에서 아름다움을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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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체온/쑨거 지음·김항 옮김/252쪽·1만4000원·창비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다. 중국 상하이 구시가지 모습. 창비 제공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다. 중국 상하이 구시가지 모습. 창비 제공
중국인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이들은 서울 강남과 명동 일대에서 통 큰 쇼핑을 하는 ‘큰손’이자 모셔야 할 손님이다. 또 ‘짝퉁’의 대표적인 생산자이며 여전히 인권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2등 시민’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 근래 국내 언론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그려진 중국인의 모습이다.

“(중국) 민중의 세계는 결코 서양식 ‘근대’를 따르지 않았다. 자기 나름의 근대 혹은 현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비교문화학자이자 사상가인 쑨거(61)는 중국을 평가하는 잣대가 지나치게 서구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국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일본의 잡지에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에세이 25편을 연재했다. 이 책은 그가 바깥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다른 중국’의 민낯이다.

저자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 등장한 ‘산보(散步)’는 중국의 성숙해진 시민의식을 상징하는 사례다. 산보는 큰 길에 대규모 시민이 모여 함께 걷는 시위 방식이다. 2007년 샤먼(廈門) 시에서는 정부의 화학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산보를 통해 공장 건설을 늦춘 바 있다. 저자는 “격렬한 저항은 아니지만 정부나 체제의 통치 방식을 ‘바로잡는’ 일을 통해 사회개혁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주로 정치와 사회, 역사 관련 책을 써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생활 속 변화를 소개하지만 정치·사회적 해석도 빠뜨리지 않는다. 중국에서 나오는 ‘산자이(山寨)’(샤오미 같은 복제품을 가리키는 용어)에 대한 해석은 재밌다. 저자는 단종된 자신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산자이 제품으로 바꾸면서, 새 제품 소비를 줄이고 ‘의도치 않게’ 독점자본 시스템에 도전하는 서민의 생활양식을 읽어낸다. 자신의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해준 농민공(농촌 출신 빈곤층 노동자)에게 ‘켜짐’과 ‘꺼짐’이 거꾸로 연결된 전기 스위치를 항의한 일화도 있다. 그의 항의에 대해 농민공이 “습관을 바꾸라”고 설득한 것을 두고 혁명의 시대를 버텨온 중국 농민들의 유연성과 연결짓는다.

문화혁명기에 성장한 저자는 부모를 따라 농촌인 둥베이(東北) 지방으로 보내져 농업 생산에 종사했다. 그는 ‘문혁 시기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헌신했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거부하지만 노동자의 고통은 인정한다. 하지만 문혁이 고통뿐이었다는 주장도 반대한다. 그는 어린 시절 먹었던 둥베이 지방 팥떡의 시큼한 맛을 떠올리면서 “문혁의 고통과 추억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썼다.

외부인의 시각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도 있다. 그러나 중국 상황에 대한 중국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7일 국내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저자는 “어떤 면에서 중국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깨끗하지 못한 사회가 맞지만 더러운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것을 길러내는 곳 역시나 중국”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낼 당시 일본의 혐중 분위기에 맞서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싶었다”며 “조만간 나올 중국판 책에는 중국 사회에 대한 더 많은 비판을 던질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책 속의 ‘중국’이 장밋빛도 아니고 잿빛도 아님은 물론이다. 장밋빛이나 잿빛을 포함한 여러 색이 섞여 혼돈으로 가득 찬 중국이 있고 이것이 평범한 생활인에 의해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 집약된 말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중국의 체온#쑨거#산보#산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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