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시골에서는 느리게 산다고? 무슨,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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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좋다고? 개뿔!/김충희 글·그림/316쪽·1만5000원·낮은산
‘시골이 좋다고?…’를 쓴 김충희 씨

시골생활 10년을 만화로 그린 김충희 씨. 저자 제공
시골생활 10년을 만화로 그린 김충희 씨. 저자 제공
‘시골이 좋다고? 개뿔!’

만화책 제목이다. 내용도 제목 그대로다. 시골로 간 사내의 시골살이 소회인데 “좋긴, 개뿔!”이란다. 몇 장 넘기니 확실히 ‘시골, 어렵겠는데’ 생각이 든다. 벨레기덩(‘별나다, 남다르다’는 뜻의 제주 방언) 씨네 가족이 싼값에 빌린 주택의 지붕은 비만 오면 샌다. 툭하면 뱀이 집 안에 들어오고 방바닥을 돌아다니는 지네에게 살이 뜯긴다. 괴성을 지르며 농작물을 노리는 노루, 그 노루를 쫓으려는 농부들의 총소리는 조폭 싸움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런데 읽다 보니 어쩐지 말려드는 것 같다.

밭에다 콩을 심었더니 까치며 멧비둘기가 싹을 뜯어먹는다고 투덜, 하루가 멀다 하고 먹을거리 나눠 준다며 찾아오는 이웃들이 성가시다고 투덜댄다. 시골에서 사는 게 녹록지는 않아도 ‘뭔가 있어 보인다’. 그 ‘뭔가’가 궁금해서, 제주 애월읍에 자리 잡은 지 10년째라는 ‘시골이 좋다고? 개뿔!’의 저자 김충희 씨(48·사진)한테 연락해 봤다.

―이거 ‘시골 디스’ 책 아닌가.

“아니다. 그저 난 시골에서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생각을 했고, 뭘 하든 좀 지질했다는 얘길 만화로 한 거다. 시골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고 아닌 사람은 아닌 대로 살면 되지. 다만 시골도 도시도 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가. 그런 걸 좀 생각해 봤으면 했다.”

―제주 시골에서 농사짓게 된 건 뭣 때문이었나.

“원래 제주 출신이다. 시골은 아니고 제주 도회지에서 자랐고 서울로 올라왔다. 만화가가 되고자 문하생으로 지냈다. 찍어내는 듯한 만화 시스템에 회의를 느껴 낙향했다. 딸아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자연에 관심이 생겼고 시골로 오게 됐다. 농사는커녕! 농사라기보다 땅에서 그냥 혼자 놀았던 것 같다. 땅을 파고 돌을 고르고 풀을 매고. 그런데 만화만큼 재미난 구석이 있더라.”

―시골 생활을 하면서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처음 시골에 왔을 때 들뜨고 행복했던 식구들 모습이 생생하다. 눈을 감으면 그때 그 향긋한 시골 내음이 몰려온다. 그런데 요즘 우리 가족은 어째 도시에서보다 더 바쁘다. 시골에선 느리게 산다는데 이게 웬 말인지. 오늘은 또 얼마나 바쁜지. 강아지한테 밥도 줘야 하고, 제비 두 마리가 현관 처마에 집을 짓겠다고 자꾸 똥을 싸대며 흙을 갖다 붙이는 걸 봐야 하고….”(또 말려들었다. 시골에서의 ‘바쁜’ 삶은 이런 거다.)

―힘들어도 지금껏 계속 풀 매고 밭 갈면서 사는 이유는 뭔가.

“나무도 많고, 새도 많고. 흙냄새도 맡고, 동네에 좋은 이웃도 있고. 도시에서 지낼 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늘 신경 써야 했고, 사소한 갈등도 풀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땅에 뭔가를 심어 키우는 것도 조금씩 하다 보면 잘하지 않을까. 여기 와서 알게 됐다. 내가 땅을 좋아한다는 걸. 후기에 썼듯 사는 곳이 어디든 중요한 건 ‘나’를 아는 게 아닐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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