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펴낸 박훈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淸 ‘안보 우산’ 기대한 조선 설마설마할때 서양을 두려워한 일본은 근대화에 다걸기”

박훈 서울대교수는 현재 일본 교토대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메이지유신 관련 새로운 자료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박훈 교수 제공
박훈 서울대교수는 현재 일본 교토대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메이지유신 관련 새로운 자료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박훈 교수 제공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일본의 근대화만큼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도 흔치 않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시아 역사 전반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48)가 펴낸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민음사)는 이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박 교수는 20여 년 동안 메이지 유신 연구에 천착했다. 오랜 기간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지난해 1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역사학연구회의 정기학술지에 메이지 유신 관련 논문을 싣기도 했다.

안식년을 맞아 지난해 9월부터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에 체류 중인 박 교수와 9일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요즘 메이지 유신 사료를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메이지 유신에 열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공부를 시작한 1993년부터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특히 메이지 유신은 외부의 도전에 맞서 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일본처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건가.

“지식인들 스스로 서양에 대해 강한 위기의식을 가졌던 일본과 달리 조선 지식인들은 청나라 중심의 국제질서가 설마 변하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일본에선 이미 1825년 아이자와 야스시가 신론(新論)에서 러시아의 팽창과 만주 진출을 점치는 글을 썼다. 또 고종과 대원군, 명성황후 사이에 권력 분열이 오래 지속된 것도 결정적이었다. 강력한 정치 리더십은 위기 대응에서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 막부가 내전을 일으키지 않고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 순조롭게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혼란 없이 짧은 기간에 정치 리더십을 다시 구축한 일종의 ‘질서 있는 변혁’이었던 셈이다.”

―책에 보면 당시 막부 정권이 군사력 경제력 등에서 건재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왜 천황에게 순순히 권력을 내준 건가.

“서양 열강이 곧 침입할 거라는 극단적인 위기감과 당시 유포된 유학의 존왕(尊王)사상이 막부가 내전을 자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에선 서양이 쳐들어오면 중국이 개입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관념 자체가 없었다. 한마디로 중국의 ‘안보 우산’을 기대할 수 없었다.”

―최근 집단적 자위권 논란 등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일본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주변 정세의 전환, 국내 불안과 자신감 저하, 위기를 모험주의로 해결하려는 정치세력 집권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생겼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후 70년간 민주주의를 유지한 데다 막대한 국방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돼 노골적인 군사국가로 가긴 힘들다고 본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박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