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프라하 ‘7성당’의 섬뜩한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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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옛 모습 재건하려는 음모… 수수께끼가 하나 둘 벗겨지는데…
◇일곱 성당 이야기/밀로시 우르반 지음/정보라 옮김/496쪽·1만3800원·열린책들

‘일곱 성당 이야기’에 등장하는 체코 프라하의 에마우제 성당(왼쪽 사진)과 성 카테리나 성당. 소설은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중심 소재로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유산, 과거와 현재의 미추(美醜), 찬란함과 끔찍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일곱 성당 이야기’에 등장하는 체코 프라하의 에마우제 성당(왼쪽 사진)과 성 카테리나 성당. 소설은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중심 소재로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유산, 과거와 현재의 미추(美醜), 찬란함과 끔찍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체코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중세 성당에서 귀를 찢는 금속성 굉음이 울려 퍼진다. 거대한 종의 추에 달린 것은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얼마 뒤에는 살해된 사람의 다리가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힌 채 발견되고, 이어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10대 소년의 시신 사진이 전해진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 제복을 벗은 주인공 K는 잇단 엽기 사건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복직한다.

자신을 K라고 불러 달라는 소심한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크베토슬라프 슈바흐.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이다. 별다른 재능도 없고 이름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주인공은 경찰이 되기 전 프라하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다가 중퇴했다. K는 학교 대신 프라하의 중세 성당을 순례하며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현대화 과정에서 가차 없이 해체된 옛 건물을 안타깝게 추억한다.

‘나를 정말로 슬프게 한 것은 망가진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건물들의 삶, 과거를 경멸하는 체코인들이 뽑아내고 절단해버린 도시의 눈과 귀와 혀들이었다. … 각자의 인생이 담긴 집들을 망각 속으로 떠나보낸 뒤 그 자리에 20세기 말에는 아무도 들어가 살지도 않는 건물을 지었다.’

경찰에 복직한 K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귀족 출신 그뮌드와 조력자 3명을 만난다. 그뮌드는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인물. 그는 나아가 14세기의 법과 정의, 종교적 순수와 엄숙을 복원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꾸미고 있다. 그뮌드는 옛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건물에 얽힌 과거의 사건을 보는 K의 능력을 은밀하게 이용한다.

K는 이어지는 기묘한 사건에 휩쓸리며 진실을 향해 다가가다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체코의 중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의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만 나머지 하나 ‘7성당’은 대체 어디인가. 그동안 살해되거나 협박 편지를 받은 이들은 모두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한 이들이었다.

1998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체코의 (움베르트) 에코’라 평가받는 밀로시 우르반(47)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세 체코의 종교개혁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이나 소련 붕괴 이후 격변기의 시민 정서는 한국 독자에겐 아무래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프라하 거리와 중세 성당을 구석구석 눈여겨보는 듯한 풍성한 묘사,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건을 그려내는 진중한 문체,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그런 걸림돌을 훌쩍 넘게 만든다.

한국어판 소설 출간을 맞아 작가가 내한했다. 21일 체코영화제(서울 삼일대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산티니의 말’ 상영에 참석한 뒤 관객과 대화 시간을 갖는다. 22일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팬 사인회를 연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일곱 성당 이야기#체코 프라하#소설#누명#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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