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첫사랑 둘러싼 혼란스러운 뒷담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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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의 사랑/전아리 지음/160쪽·1만 원·다른

지금껏 고백한 일곱 명의 여학생에게 완벽하게 차인 고등학생 재경. 연애 전략을 습득하기 위해 서점에서 ‘누구나 카사노바가 될 수 있다’를 집어 든다. 부록이 콘돔이나 스킨십 안내 책자가 아니라 뜬금없이 형광노란색 싸구려 털장갑인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경의 앞날을 예언하는 것 같다.

재경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독서실 옥상 난간에 서 있던 은하. 재경은 제안한다. “너 한 달 동안만 나랑 사귀자. 한 달 후엔 네가 원하는 대로 죽는 걸 도와줄게. 대신 그때까진 어떤 사고도 치지 않고 내 여자친구로 지내는 거야. 어때?”

재경의 친구들은 은하가 유명 몰카의 주인공이자 원조교제 알바를 뛰는 애라고 손사래를 친다. 결국 인터넷에서 몰카를 찾아 본 재경은 동영상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교사조차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고약한 ‘일진’, 여동생 현정이었다. 몰카를 퍼뜨린 사람은 현정이었다.

재경은 은하의 세계에 발을 내디디지만 혼돈스럽기만 하다. 은하가 현정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을 돕기로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재경은 자문한다. 내 동생은 누구지? 내 첫사랑 은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재경은 진실을 찾아보려고 한다.

‘난무하던 욕설과 살기를 띤 눈빛, 매번 요란하게 닫히던 방문과 부엌 바닥에 깨진 그릇들. 이현정이 늘 달고 다니던 악다구니와 빈정거림이 그 애만의 울부짖음이었다는 걸 어쩌면 나는 진작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놓치지 말고 붙들어, 도와달라는.’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첫사랑에 숨은 싸늘한 비밀로 생동감 넘치게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이해하는 것보다 오해하는 게 편하고, 회유하는 것보다 경멸하는 것이, 나무라는 것보다 외면하는 것이, 못 본 척하는 게 익숙한 무심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말한다. ‘때로는 무리 속에서 빠져나와 홀로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외로움이 두려워 늘 다수 속에 휩쓸려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면 방향을 정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재경#여자친구#첫사랑#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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