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현대인은 지평선 결핍으로 병들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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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이란 무엇인가/매슈 드 어베이투어 지음·김훈 옮김/432쪽·1만6000원·민음인
英소설가가 쓴 ‘캠핑의 모든 것’

발상을 바꿔 보자. 우리 꼭 그렇게 야외로 나가야 하는가. TV를 틀거나 신문을 펼치면 온통 아웃도어 제품 광고뿐이다. 주말이면 산과 들에 넘쳐나는 사람들. 야영장은 몇 주 전이라도 예약이 쉽지 않다. 굳이 뭐 이렇게까지….

아무리 툴툴대도 저자의 반응은 단호하리라. 그래도 가자. 영국 소설가이자 방송인인 저자는 지금도 1년에 한 달 이상은 부인과 함께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진짜로?) 캠핑을 떠난다. 최소한 와이프한테 주말에 애랑 좀 놀아주란 구박은 받지 않겠구먼.

근데 솔직히 책을 읽다 보면, 살짝 노홍철이 눈앞에서 아물거린다. 이 부부, 신혼 때부터 무거운 배낭을 몇 개씩 짊어진 채 자동차도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캠핑을 다녔단다. 심지어 유모차에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애까지 질질 끌고서. 남의 일에 신경 안 쓰는 서양인도 그들만은 정말 이해가 안 됐나 보다. 매번 승객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 심지어 어쭙잖게 캠핑길에 올랐다가 자신과 아내는 돼지 독감에 걸려 밤새 구토하고, 애들도 울다 지쳐 녹초가 된 경험도 있다. 다시 한번 묻자. 뭐 이렇게까지….

“캠핑은 주의하고 깨어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칙칙하고 몽롱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더 확연히 바라보게 만든다. 자연 속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일상으로 복귀할 때면, 문명은 필연적인 것이자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저자가 볼 때 현대인은 ‘지평선 결핍’으로 병든 상태다. 도시와 첨단문명이란 초콜릿의 단맛에 길들여져 허리와 뇌에 군살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인류가 동물과 갈라지기 전, 아니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법을 배워 왔다. 지금도 유목민은 광야를 떠돌며 천막생활을 영위하지 않나. 캠핑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에 가장 부합하는 생활방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무조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모험과 낭만이란 겉멋에 취해 함부로 나섰다가 후회만 잔뜩 쌓이기도 한다. 텐트를 붙잡고 몇 시간을 끙끙거리다 ‘내가 지금 여길 왜 왔나’ 짜증만 솟구친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챙기다 보면, 그 고치기 힘들단 ‘장비 병’에 걸려 알토란 같은 쌈짓돈을 날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갈수록 캠핑족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저자에 따르면 캠핑의 역사 자체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서구에서 각광받은 캠핑은 도시 생활의 무력함과 허약함을 보충해주는 멀티 비타민이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야생은 줄곧 희미해져 가는 개인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최소한의 도움닫기였다. ‘캠핑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 여행가 토머스 H 홀딩(1844∼1930·현대적 텐트를 만든 이기도 하다)은 “우리 내면에서 야만적인 요소가 모조리 다 순화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참 재밌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유쾌한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의 가족 캠핑 버전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꽤나 멋들어진 개그 감각을 지닌 데다, 별것 아닌 듯한 거리도 깊게 파고들어 역사와 배경을 헤집는 수작이 보통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브라이슨의 내공까진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이만한 글 솜씨를 지닌 작가를 만나 너무 반갑다. 밤하늘 별빛이 쏟아지는 야외에서 랜턴 불빛에 비춰가며 읽을거리를 찾는 이에겐 특별히 더 추천하고 싶다. 물론 지금 간 캠핑이 그렇게 여유를 즐길 만큼 편안할 때 얘기겠지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캠핑이란 무엇인가#배낭#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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