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내게도 심장은 있다, 양심이 없을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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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시오패스/M E 토머스 지음·김학영 옮김/384쪽·1만6000원·푸른숲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자기고백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2000년)의 금융사 대표 패트릭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빼어난 매력과 지능, 습관적 거짓말과 태만, 반사회적 행위에의 몰입, 육체적 쾌락의 탐닉, 피상적 인간관계. 그는 자신보다 부유하다는 이유 때문에 태연히 친구를 살해해 집안에 유기한다. 사진 출처 imdb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2000년)의 금융사 대표 패트릭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빼어난 매력과 지능, 습관적 거짓말과 태만, 반사회적 행위에의 몰입, 육체적 쾌락의 탐닉, 피상적 인간관계. 그는 자신보다 부유하다는 이유 때문에 태연히 친구를 살해해 집안에 유기한다. 사진 출처 imdb
시종일관 타인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 반대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만 매달리는 사람. 어느 쪽이든 오래 마주앉아 대화하기 힘겹다.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근거 빈약한 험담이기 쉽고, 쉼 없는 자기 이야기는 대개 부풀린 자랑으로 빠진다.

이 책의 지은이는 후자다. 그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첫 문장은 “나는 소시오패스”라는 고백이다. 30대 여성으로 미국 한 대학의 법학 교수라는 그는 스스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 환자임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에 인용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따르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 환자는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광범위한 양상’을 보인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거짓말과 사기에 편집증적으로 몰두한다. 사회적 규범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죄에 대한 처벌은 성가신 걸림돌일 뿐이다. 글쓴이는 책을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도 좋다고 각오한 걸까. 그렇게 해서라도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파헤쳐 ‘평범한 사람들’에게 친절히 경고하고 싶은 걸까.

“나는 매학기 학생 강의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는다.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모르몬교도이며 양성애자다. 대학에서 타악기를 전공하고 음악 관련 일을 하다가 아이비리그 한 곳의 로스쿨에 진학해 수석 졸업했다. 로스앤젤레스 대형 로펌에 들어갔지만 근무 태만으로 해고됐다.”

저자가 밝힌 이력이다. M E 토머스는 블로그(sociopathworld.com) 필명. 그는 정신의학과 심리학 서적을 탐독한 뒤 자신이 소시오패스라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블로그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심리학자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텍사스 A&M대 심리학과 존 이든스 교수의 소견서를 책 첫머리에 붙였다.

이든스 교수가 실존 인물임은 A&M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견서에 드러난 토머스의 신상은 ‘30대 백인 여성’이라는 것뿐이다. 이든스 박사는 토머스에 대해 “심각한 공감능력 결핍, 사회와 개인에 대한 계산적 태도,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에 대한 무반응 등 소시오패스 기질을 보인다”고 썼다.

소시오패스 저자가 가명으로 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취향에 따라서는 흥미로운 두뇌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방비 없이 토머스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따라가 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책의 띠지에는 인기 TV 시리즈 주인공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셜록 홈스, 닥터 하우스, 덱스터. 서점 진열대에서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함이었겠지만 이들 가운데 소시오패스는 정의로운 심판자라 자부하는 살인마 덱스터뿐이다. 영국 BBC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 홈스는 스스로를 “고성능 소시오패스”라 규정한다. 미국 폭스채널 ‘하우스’의 주인공인 천재 진단의학과 의사는 8개 시즌이 이어지는 8년 내내 줄기차게 자신을 반사회적 괴물로 몰아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셜록과 하우스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소시오패스는 결코 자책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자 허비 클렉클리는 1941년 저서 ‘온전한 정신의 가면’에서 소시오패스를 “탁월한 능력을 가진 반사회적 인물”로 정의했다. 소시오패스는 여러 면에서 비범한 능력, 매력, 위트를 보인다. 늘 차분하고 언변이 좋으며 절박한 상황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흥미로운 게임처럼 타인의 인생을 파멸시키길 즐기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 블로그 단골 독자 중에는 소시오패스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나 소설에서) 소시오패스가 냉정하고 유능하며 강력한 사람으로 자주 묘사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시오패스 수련 입문서로 삼을지, 늘 점잖게 미소 지으며 냉혹하고 잔인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승승장구하는 주변의 누군가를 식별해낼 도구로 삼을지. 독자의 선택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양심#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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