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현 “위로란 슬프고 외로울 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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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슬픔장애재활클리닉’ 펴낸 소설가 한차현

소설가 한차현은 12일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광화문에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관심을 갖는 일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소설가 한차현은 12일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광화문에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관심을 갖는 일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자신의 슬픔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슬픔 자체보다는 그 속에 매몰된 자기 자신에게 더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로는 그런 자각만으로도 비로소 위로의 긴 치유 과정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지요.”

소설가 한차현(44)의 신작 장편 ‘슬픔장애재활클리닉’(박하) 중 한 대목이다.

남주인공 차연은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뒤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슬픔 위로 서비스 대행업체 ‘애도와 위안의 사람들’. 여주인공 원형은 자살 희망자의 안내인이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차연과 원형 앞에 가슴속에 슬픔이 구렁이처럼 똬리를 튼 불안한 이들이 속속 등장한다.

12일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서울 광화문에서 작가를 만났다. “위로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결코 위로가 되지 않는,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곁에 있는 누군가가 위로하는 그 순간, 교감하는 찰나에 존재의 의미가 빛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 역시 불안이 깃든, 불안정한 해피엔딩이다. 동반자살에 실패한 이연은 한때 차연의 고객이었다가 다시 자살하려 한다. 이를 알아챈 차연은 원형의 도움을 받아 이연을 구출해낸다. 차연은 ‘많이 힘들었나요. 그래도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한다. “전화, 매일 할 거예요. 잘 살고 있는지.” 작가는 “완벽한 위로는 아니지만 살고자 하는 자발심이 이연에게 싹틀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작가의 기억에 새겨진 가장 따스한 순간을 물었다. 2005년 ‘창작과 비평’이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장편소설을 공모했을 때였다. 결과는 당선작 없음. 사유를 설명하는 도마 위에 그의 이름과 작품이 올랐다. 낱낱이 신분이 공개된 최종심 낙선자에게 문학계는 가혹했다. 이후로도 주요 문학상 마지막 심사까지 올랐다가 줄줄이 떨어졌다. 막막한 나날이었다.

소설가 김도언을 주축으로 시인 신동옥, 소설가 원종국 등이 모여 ‘한차현 최종심 탈락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신인을 알아봐 주지 않는 출판계를 성토하고 화내다가 함께 술 마시고 다독이고…. 작가는 “그들이 곁에 있어준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위로였다”고 회상했다.

원래 이 소설의 제목은 ‘누군가 곁에 있고 가위에 눌렸을 때’였다. 가위에 눌려 답답하고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옆 사람이 어깨 한 번 툭 쳐주면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옆 사람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는 그런 상황. 우리는 모두 촛불처럼 위태로운 존재이기에 서로를 눈여겨보고 다독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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