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이 건물, 어떻게 보이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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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건축/이경훈 지음/376쪽·1만5000원·푸른숲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김석철 오효림 지음/476쪽·2만3000원·창비

동북쪽에서 내려다본 서울 예술의전당. ‘못된 건축’은 “무모하도록 진부한, 자연 속에 갇혀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으로 예술을 늘어놓은 배치”라고 비판했다. 반면 설계자인 김석철 교수는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건축 속에 도시를 만들었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창비 제공
동북쪽에서 내려다본 서울 예술의전당. ‘못된 건축’은 “무모하도록 진부한, 자연 속에 갇혀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으로 예술을 늘어놓은 배치”라고 비판했다. 반면 설계자인 김석철 교수는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건축 속에 도시를 만들었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창비 제공
한 토막의 주어진 땅에 ‘정답’으로 딱 떨어지는 건축물은 없다. 사람들이 그런 건물이 있다고 말한다면 누군가가 그것이 정답이라고 잘 설득한 까닭이다. 건축가는 눈앞의 땅에 얹어지는 온갖 요구를 아우르며 최선의 공간을 찾아내려 발버둥칠 뿐이다. 까다로운 요구를 던지는 주체는 때로 자연이고, 때로 인간이다.

그렇게 맺은 답이 건축가의 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못된 건축’은 제목부터 논란거리가 될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건축가가 감당한 수고와 고민을 생각하면 세상에 나쁜 건물이란 없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책 후반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예술의전당을 ‘도시적으로 못된 건축’으로 낙인찍으며 그 전제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예술의전당은 “무모하고 저열한 방법으로 전통의 모티브를 가져와 ‘선비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한, 건축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최악의 시도”로 몰아세워진다.

예술의전당에 대한 논란은 30여 년 전 공간계획 착수와 동시에 시작됐다. 물론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그 정권의 야심작을 드러내놓고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성토가 높아진 건 1990년대부터다. 이 시기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학생들은 수업 때 한두 번은 예술의전당이 얼마나 나쁜 건축인지 한 맺힌 듯 난도질하는 인민재판에 참여해야 했다.

‘못된 건축’이 출간된 이틀 뒤 예술의전당 설계자인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의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가 나왔다. 기자 출신 변호사에게 제안하고 2년간 30여 회의 인터뷰를 진행해 대담 형식으로 기술한 회고록이다. 39세 때 예술의전당 설계자로 선정된 김 교수는 “공연 또는 전시 관람이라는 1차적 목표 외에 이 공간에서 다른 삶을 영위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한 건축가는 내가 유일했다”고 자평했다. 당시 함께 현상설계에 참여한 스승 김수근(1931∼1986)의 안에 대해서는 “개방공간을 앞쪽(북쪽)에 배치하고 뒤쪽 우면산 경사를 따라 건물이 들어서도록 해 공간계획 마스터플랜과 배치됐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에 앞서 ‘못된 건축’이 도마에 올린 나쁜 사례는 남대문을 찍어 누르듯 둘러싼 오피스빌딩 무리다. 저자인 이경훈 국민대 교수는 주로 프랑스 파리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서울 건축물의 폐단을 꼬집었다.

“도시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자부심은 도시 건축물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이웃 건물을 의식해 자신이 속한 도시에 염치를 보여야 한다. 파리 개선문 광장 주변 건물들은 광장을 만들기 위해 제 몸을 낮추고 찌그러뜨리고 물러서 있다. 남대문 앞 신한은행 본점 건물은 남대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듯 무시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분명 선뜻 변명해주고픈 마음이 들지 않은 건축 공간이 잔뜩 쌓여 있다. 지구 반대편 파리에 구현된 공간의 가치관을 들이밀면 처량한 마음까지 든다. 그렇다면 서울시민은 파리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절망해야 할까. 그럴 리 없다.

이경훈 교수는 “예술의전당은 주차장이 충분히 넓어 자동차로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지하철역에서 접근하려면 육교를 건너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대목이다. 공연시간에 임박해 예술의전당을 찾는다면 평일이든 휴일이든 자동차나 택시는 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지하철역에서는 횡단보도로 통하는 골목 쪽으로 접어들어야 빠르고 한가롭다.

이 교수는 ‘착한 건축’의 예로 경복궁 앞 트윈트리타워를 꼽았다. 역사적인 대지에서 스스로를 흐트러뜨려 랜드마크인 동십자각을 돋보이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한 중년 여성 도시전문가가 “경복궁에서 길 하나 건넌 자리에 무식하게 지은 건물”이라고 한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을 것이다. 건축에 정답이 없듯,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한 왈가왈부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건축가가 제안한 공간의 부족함을 차츰 수정해 건축을 완성하는 주체는 건축가가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김석철 교수는 예술의전당 현상설계안에 지하철로 연결되는 지하광장을 넣었다. 건축주(정부)는 도면을 바꿔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 2008년 리모델링을 통해 본 모습을 찾은 것이 지금의 지하통로다.

인터뷰를 진행한 오효림 씨는 “김 교수는 종종 독선적으로 보였다. 변명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인해 세상에 쓸데없는 오해를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석철 교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전력투구하며 살아낸 건축가다. 그가 지은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몫이다. 두 책에 언급된 공간을 찾아가 스스로 판단해 그 완성에 참여하길 권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못된 건축#도시를 그리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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