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곡비… 여리꾼… 다모… 조선의 별난 직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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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직업실록/정명섭 지음/296쪽·1만4000원·북로드

상점 앞 호객꾼인 ‘열립군’부터 돈 받고 대신 울어주는 ‘곡비’, 소방관인 ‘멸화군’과 노비 사냥꾼 ‘추노객’까지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못지않게 별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림은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인의 모습. 북로드 제공
상점 앞 호객꾼인 ‘열립군’부터 돈 받고 대신 울어주는 ‘곡비’, 소방관인 ‘멸화군’과 노비 사냥꾼 ‘추노객’까지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못지않게 별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림은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인의 모습. 북로드 제공
지금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됐지만 예전에는 상가(喪家)에서 통곡 소리가 커야 했다. 그래서 상주들은 체면을 살리기 위해 돈으로 슬픔을 샀다. 전문적으로 곡 하는 여인들을 고용한 것이다. 곡비(哭婢)라고 불린 여인들에게 눈물 한 방울은 동전 한 닢이었다. 곡비의 가장 큰 고객은 선왕의 장례를 치르는 왕실이었다. 세종 1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왕의 장례식에 저자의 여자들을 불러다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고 아무나 곡비로 동원해선 안됐다. 숙종 때 사헌부 지평(종오품 벼슬)을 지낸 한영휘는 어머니 장례식에 기생을 곡비로 썼다가 탄핵을 당했다.

책은 곡비처럼 조선시대의 별난 직업들을 소개한다. 선조들의 밥벌이 풍경이 흥미롭다. 여리꾼은 오늘날 속칭 ‘삐끼(호객꾼)’의 조상 격이다. 상점 앞에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린다는 뜻의 열립군(列立軍)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리꾼은 남의 눈에 잘 띄게 까치등거리(검정 바탕에 바둑판 모양의 흰 줄무늬가 그려진 옷)를 입거나 노란 초립(갓)을 썼다. 손님과 상점주인 사이에 거래를 성사시키고 대가를 받았다.

조선에는 정부 운영 사우나가 있었다. 한증소(汗蒸所)로 불린 사우나는 대개 돌로 만든 커다란 움집 형태였다. 집 가운데 화로에서 활활 타는 소나무 가지 위에 물을 부으면 흰 연기가 가득 찼다. 한증소는 환자 치료용으로 쓰였는데, 운영은 한증승(僧)이란 승려가 맡았다. 승려는 농사를 안 짓기에 사우나 관리 인력으로 동원하기가 편했다. 한양과 변두리를 돌며 시신을 수습하는 승려도 있었는데, 매골승(埋骨僧)으로 불렸다.

TV드라마로 유명해진 여형사 다모(茶母)도 빼놓을 수 없다. 포도청의 다모 채용 조건에 따르면 키가 당시로선 큰 키인 5척 이상(160cm)에 쌀 다섯 말을 번쩍 들 수 있는 힘과 막걸리 세 말을 단숨에 마시는 담력이 있어야 했다. 치마 속에 쇠도리깨를 숨기고 있다가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역적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밖에 소방관이었던 ‘멸화군(滅火軍)’, 매 잡는 공무원 ‘시파치(時派赤)’, 노비 사냥꾼 ‘추노객(推奴客)’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조선직업실록#곡비#여리꾼#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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