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유교가 남긴 가장 소중한 자산 ‘近代性’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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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정치적 무의식/김상준 지음/254쪽·1만5000원·글항아리

근대성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보통은 서구의 과학기술혁명을 먼저 떠올린다. ‘근대화=서구화’의 등식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는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시장화, 생활의 합리화를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에겐 근대성은 이를 포괄한 문명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엇이다. 여기서 문명화란 물론 ‘서구=문명, 비서구=야만’이란 서구적 관점에 입각한 게 아니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기원전 800년∼기원전 200년)에 태동한 다양한 세계문명의 조화로운 공존과 평화, 번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저자는 그 문명화의 두 축으로 ‘권력을 제약할 수 있는 힘’(비판성)과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할 수 있는 역량’(윤리성)을 꼽는다. 따라서 ‘비판성+윤리성=근대성’이 완결될 때 비로소 전 지구적 문명화가 가능해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실 이는 근대성을 권력에 대한 합리적 비판력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찾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사유를 확장시킨 것이다. 저자의 독창성은 이를 서구문명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간주한 베버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중층근대론’을 펼친 데 있다. 11세기 중국 송대의 신분제 해체와 관료제의 확립부터 시작된 초기근대, 18∼20세기 식민지배에 기초한 서구 주도의 본격근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화와 더불어 다원적 근대화가 이뤄지는 후기근대로 근대성의 시공간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저자가 2011년 출간한 ‘맹자의 땀, 성왕의 피’(아카넷)에서 유교 창건자들이 은폐한 정권교체기의 ‘성왕의 피’가 비판성을 상징한다면 버려져 훼손된 부모의 시신을 목격한 상황에서 흘리는 ‘맹자의 땀’이 윤리성을 대변한다. 그 후속작인 이 책에는 전통적 유교사상이 이미 선취한 근대적 비판성과 윤리성의 다양한 사례 연구가 담겼다. 유교와 개발독재의 친연성을 강조한 유교자본주의론과 유교권위주의론에 대한 날 선 비판도 담겼다. 다만 의식의 영역인 비판성과 윤리성을 무의식에 갖다 붙인 논리적 비약은 아쉽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문명화#비판성#윤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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