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힙합: 블랙은…’ 출간한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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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흥분시키는 랩의 매력… 인문학적 뿌리로 파고들었죠”

26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서 만난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은 “‘싸움보단 평화가 좋은 거 아닌가’ 하는 단편적 시각으로 랩 배틀과 힙합을 바라보는 건 반쪽짜리”라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6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서 만난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은 “‘싸움보단 평화가 좋은 거 아닌가’ 하는 단편적 시각으로 랩 배틀과 힙합을 바라보는 건 반쪽짜리”라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31)은 곧잘 래퍼로 오인된다. 패션 때문이다.

늘 스냅백(뒷부분에 둘레 조절 밴드가 달린 야구 모자. 챙이 평평한 힙합 모자로도 알려짐)을 쓰고 헐렁한 힙합 풍의 의상을 즐겨 입으며 수염을 기른 넉넉한 외양으로 그는 뜻밖에 랩 대신 평론을 한다.

최근 출간한 저서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328쪽·1만5000원·글항아리)를 건네면서 그는 “힙합 역시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인문학적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는 시작점이 이 책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간 국내 힙합 서적 내용의 대다수였던 음반 리뷰나 사운드에 관한 이야기 대신 ‘힙합 인문서’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책은 ‘래퍼들은 왜 자랑을 떠벌릴까’ ‘왜 서로 다투길 즐길까’ 같은, ‘래퍼들은 하나같이 다 왜…’로 시작되는 일반적 궁금증을 풀어준다. 저자는 이를 위해 ‘게토’ ‘자수성가’ ‘허슬’ ‘스웨거’ ‘랩 배틀’ ‘리스펙트’ 같은 15개의 키워드로 책을 구성했다. 미국 내 흑인의 역사와 정서, 시대별 정치 경제 상황을 엮어 힙합만이 지닌 별난 특성의 연원과 양상을 책은 해부한다. 예를 들어 노예시대에 겪었던 흑인 남성들의 무력감과 콤플렉스가 힙합에서 여성과 동성애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터져 나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여름 화제가 된 국내 래퍼들의 ‘디스 대전’에서 느낀 환멸은 김 씨의 집필에 가속도를 붙였다. “처음엔 ‘래퍼는 싸움도 운율 맞춰 음악으로 하는구나. 매력적이다’라는 긍정적 관심이 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예술적 분석 없이 도덕의 잣대로만 배틀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죠.”

그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시(詩) 대결’,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과 입씨름을 펼치다 낙마해 절명한 위나라 문신 왕랑(王朗)의 고사, 15∼16세기 스코틀랜드의 시적 언쟁 ‘플라이팅’까지 거슬러 오르며 랩 배틀의 기원을 탐구한다. 미국 래퍼 이지 이와 닥터 드레, 제이지와 나스의 배틀을 구절구절 짚으며, 스포츠처럼 특정한 규칙 아래 언어로 겨루는 이것을 문화와 예술로서 복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랩 배틀은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언어 전쟁”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도 한때는 힙합 DJ를 꿈꿨다. 고교 시절 랩에 빠져든 그는 스물 살 때 턴테이블과 LP레코드를 사들여 “잠깐 끼적였지만” 이내 장비를 팔아치우고 글쓰기에 몰입했다. “‘가장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결합시키자’, ‘창작자는 아니지만 다른 구성원으로서 힙합 문화에 기여하자’고 생각했죠.”

국문학도인 그는 자신이 10, 20대에 느낀 ‘힙합이란 것, 멋진데…’ 하는 “즉각적 매혹의 순간”을 인문학적 뿌리로 파고드는 데 심취했다. “요즘 랩 들어간 노래들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게 흔한 일이 됐지만 힙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그 멋이 어디서 연유된 건지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봉현#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대중음악평론#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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