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태블릿PC 속 비밀… 지키려는 者, 들추려는 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김중혁 지음/420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전직 형사인 탐정 구동치는 ‘딜리터(deleter)’다. 의뢰인이 지정한 것들을 없애는 일을 한다.

‘딜리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한 소설가로 인해서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 쓴 소설과 에세이, 사랑편지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달라고 했다. 누군가는 후배와 후학을 위해 모든 걸 지우지 말고 남겨둬야 한다고 하지만 소설가는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자신이 지운 글은 덤불에 길을 내기 위해 쳐냈던 잔가지들에 불과하다고. “잔가지들이 있으면 시야를 가립니다. 결과물만 보고 그걸 음미하면 되는데, 굳이 발자국을 찾아서 뭐 합니까?”

구동치는 진짜 모습이 밝혀질까 봐 불안해하는 이들을 위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일기, 사진,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것들을 의뢰인의 주변 세계에서 삭제한다. 사실 그 없어지기 바라는 물건들은 구동치의 세계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배동훈이 갑자기 숨진 뒤 그가 딜리팅을 의뢰한 태블릿PC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구동치는 힘 있는 재력가의 비밀을 둘러싸고 들끓는 욕망과 추악한 거래의 전모에 한 걸음씩 다가서게 된다. 태블릿PC에 담긴 비밀을 지키려는 자와 그 비밀을 볼모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자 사이에서 구동치는 인간의 본성을 직시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구동치는 심지어 견과류 중에서도 껍질을 남기지 않는 아몬드를 선호한다. 김중혁이 창조한 이 탐정 캐릭터는 평범한 어느 동네의 허름하고 냄새나는 건물에서 걸어 나올 듯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태블릿PC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