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역사적 세계지도 12개… 당대의 코드가 고스란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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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지도/제리 브로턴 지음/이창신 옮김/692쪽·3만3000원/알에이치코리아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2년(1402년)에 제작한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470년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2년(1402년)에 제작한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470년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지도가 ‘욕망한다’라….

개인적으로 어떤 책이건 국내에 번역되며 제목이 바뀌는 게 싫다. 작가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진의 파악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도 원제는 ‘12개 지도의 세계사’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지도에 인간의 욕망이 투영됐다는 논지를 부각시켰다는 면에서 가점을 주련다. 여전히 ‘제목 바꿔달기’엔 동의 못 하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영국 퀸메리대 교수인 저자가 역사적인 세계지도 12개를 콕 집어 분석했다. 이를 통해 당대의 세계관(혹은 우주관)과 시대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간 지도를 다룬 책이 꽤 나왔던지라, 솔직히 이 책도 처음엔 시큰둥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읽다 보면 끝없이 빠져들게 된다”(파이낸셜타임스)는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뭣보다 지도마다 맞춤하게 부여한 주제의식이 꽤나 맛깔스럽다. 12세기 시칠리아의 지도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를 아우른 문명적 융합 아래 태어났다는 2장 ‘교류’. 1662년 네덜란드 지도 ‘대 아틀라스’를 통해 부의 축적에 끝없이 목말라했던 시기를 반영한 8장 ‘돈’. 어느 챕터 하나 처지지 않고 재밌다. 아, 21세기 최신 지도 구글 어스를 다룬 마지막 장 ‘정보’도 빼놓으면 아쉽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역시 1402년에 제작됐다는 조선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혼일강리도)’를 다룬 4장 ‘제국’이 가장 흥미로웠다. 해외학자가 이만큼이나 한국사에 해박한 것에 일단 놀랐다. 또한 그 지도에 당시 중국이란 강국과 상대하며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가며 독자적 노선을 걸은 조선의 웅지가 배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참고로 혼일강리도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이 등장하는 현존 최고의 지도이기도 하단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런던 패딩턴 역에서 발견한 한 낙서를 소개한다. “멀리 떨어진 곳도 다른 곳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세상에 완벽한 지도란 없다. 그만큼 상대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이 지도에 담겨 있다. 지도는 단지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열쇠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욕망하는 지도#세계지도#dur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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