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어차피 욕하며 사는 인생… 작심하고 파헤쳤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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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연구해 ‘호모욕쿠스’ 쓴 이병주 변호사

저자인 이병주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욕(辱)을 학문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알아야 “좋은 욕으로 나쁜 욕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포리아 제공
저자인 이병주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욕(辱)을 학문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알아야 “좋은 욕으로 나쁜 욕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포리아 제공
변호사가 욕(辱)을 미화한다?

좀 헷갈린다. ‘변호사가 욕먹는다’는 얘긴 들어 봤다. 그런데 욕을 종합 연구했단다. 그 결과 우리 모두 ‘욕해야 사는 인간’, 호모욕쿠스라 결론 내린다. 다섯 문장 쓰는 데 거의 욕이 들어가니 덜컥 욕지기가 치민다. 에라이, 연수차 미국에 가 있다는 이병주 변호사(50)에게 욕먹을 각오로 한밤에 전화를 넣어 봤다.

―욕 찬양 및 고무는 국가보안법은 아니어도 풍기문란죄에 안 걸리나.

“어찌 알았나. 서울대 물리학과 다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개월 투옥됐다. 그때 가슴에 울분 많이 쌓였다. 욕 안 하곤 못 살겠더라. 변호사란 직업도 그렇다. 서로 욕하면서 옳네 그르네 따지는 일이다. 욕 없이 사는 인생이 없더라. 그럼 차라리 제대로 파헤치고 싶었다. 아참, 당연히 욕이 지나치면 법에 걸릴 수 있다.”

―연구해 보니 욕에 좋은 점이 있던가.

“소통과 정화 작용을 한다. 촛불시위를 보라. 답답한 현실에서 욕은 하나의 출구를 찾는 방법이다. ‘싸워야 정 든다’는 말도 있다. 내 속내를 털어놓고 다른 이를 읽는 도구로서 욕은 거칠지만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실컷 하되 상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지는 말길. 내게 욕할 자유가 있다면 상대 역시 권리가 있다.”

―저자의 욕은 상욕하곤 개념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고 수준이 높지도 않다. 한국인에게 욕은 독특한 의미를 지녔다. 영어나 라틴어에선 똑 떨어지는 말이 없다. 비판(criticize)보단 강하고 저주(curse)보단 약하다. 그런데 보통 욕한다고 해석하는 ‘swear’엔 맹세한단 뜻도 있다. 맹세란 자기 말이 진심임을 약조하는 거 아닌가. 욕에 내포된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욕에도 철학이 있단 소린가. 애들 들을까 겁난다.

“하나 묻자. 어릴 때 적당한 욕은 친밀감의 표시였다. 그리고 말린다고 안 하나. 다 누구한테 배웠겠나. 욕 나올 현실도 어른들이 만든 거다. 물론 긍정적 방향으로 분출하도록 만들어야지. 욕이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사회의 몫이다.”

―물리학도가 데모하다 감방 가고, 노동운동하다 변호사 되고…. ‘욕보신’ 인생이더라.

“좋은 자세다. 살아 보니 그리 남 신경 긁어야 할 때가 있다. 이건 선택의 문제다. 욕 안 먹겠다고 움츠린 삶과 다소 생채기 나도 부대끼는 인생. 난 후자가 더 건강하다고 본다. 욕에는 죄가 없다. 점잖게 정답만 따지면 개인도 사회도 경직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호모욕쿠스#이병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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